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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도 없이 갔다"…동반자살 세모녀 쓸쓸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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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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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좁은 집엔 단란한 가족 추억만…빈소 차리지 않고 발인

 

"조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9년이나 잘 지냈는데 우리한테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갈 수 있나요."

지난 26일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살던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 주택에는 28일 짐 정리가 한창이었다. 인부들은 반지하 주택에서 쉼 없이 짐을 찾아 날랐다.

작업을 지휘하고 비용을 정산한 주인 임모(73)씨 부부는 잔뜩 찌푸린 채 기자에게 "속상하다"고 털어놓았다.

임씨는 "살면서 집세나 공과금 한 번 밀린 적 없었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며 "그런데 마지막이 이렇다. 말도 없이 가버려 서운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박씨가 냈던 보증금 500만원으로 '정리'에 드는 비용을 정산하고 남은 돈을 박씨의 남동생에게 주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세 모녀가 떠난 자리는 초라했다. 집 구석구석에 먼지 덩어리가 굴렀고 낡고 뜯어진 벽지 사이로 콘크리트가 드러났다.

큰 방은 사람 셋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로 비좁았다. 작은 방엔 누렇게 변색된 구식 대형 컴퓨터 2대가 놓여 있었다.

인부 박모(50)씨는 "세 가족이 살았던 집치고는 짐이 너무 없다. 만화책만 많을 뿐 특히 옷가지가 적다"며 "가전제품들도 다 못쓰고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고 전했다. 단출한 살림살이는 이미 세상을 등진 세 모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줬다. 냉장고 안에는 김치 등 반찬, 밥솥 안에는 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두 딸은 만화가를 꿈꿔온 듯 작은 방 벽장에 만화책이 즐비했고 직접 만화를 그린 연습장도 다수 발견됐다. 벽에 일본 연예인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달력에는 이달 19일을 '삼촌 생일'이라 적어둔 표시가 보였다.

대문 앞에 쌓인 짐들 사이로 큰 딸(35)과 작은 딸(32)의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이 눈에 띄었다. 5∼6권의 앨범에 박씨 부부의 신혼 시절부터 두 딸의 성장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남편과 박씨, 두 딸이 환하게 웃는 단란했던 한때의 액자 사진도 인부들이 정리했다. 남편은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졌고, 그 이후인 2005년 세 모녀가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구입한 과자의 이름, 감자 몇 알 정도까지 정갈한 글씨로 꼼꼼히 쓴 가계부가 눈길을 끌었다.

세 모녀는 지난 26일 오전 8시 30분께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들 옆엔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다.

주인 임씨 부부는 "일주일째 집안에서 인기척 없이 TV 소리가 이어져 빈집에 불이 날까 봐 걱정돼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쓴 봉투와 현금 70만원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씨의 남동생은 "최근까지도 수시로 연락하면서 지냈다"며 "도움을 주려고 해도 누나가 괜찮다며 사양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울음을 삼켰다.

박씨 모녀의 시신은 경찰병원에 안치됐다. 유족은 빈소를 차리지 않고 이날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추모공원에서 발인한다.

송파구청 측은 교회 등과 연계해 장제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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