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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섹시한 진보'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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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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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기고]

 

내 과실에 의한 작은 접촉사고. 운전석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누군지 모르는 그를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것, 접촉사고 시에 발생하게 될 혹시 모를 '욕설'과 '심술'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프레임(frame)은 짜는 것이기도 하지만 씌우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선생님'이라 불러줌으로써 생선가게의 종업원은 졸지에 선생님이 된다.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매우 점잖다. 선생님은 욕하지 아니하며, 심술부리지 않는다. 반면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썩 유쾌하지 못하다. 왠지 목청이 클 것 같고, 억지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가 보아도 아저씨인 그를 선생님이라 칭한다.

일견 얍삽해 보이는 이런 '프레임 씌우기'는 여러 상황에서 유연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가령 애인의 잔소리가 싫다면, "너는 오빠한테 잔소리 같은 거 안 하잖아…" 라고 말해주면 된다. 그러면 애인은 꼼짝없이 '잔소리 안 하는 여자'가 되어 버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일부 내용이다. '규정함으로써 규정되는 것.' 프레임 씌우기의 단순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필시 꽃이 된 그에게 "꽃"이라 불러 주었을 것이다.

효과적인 프레임 씌우기에는 두 가지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첫째, 불러줄 대상 스스로가 자신을 무언가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자신을 깡패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에겐, 제아무리 선생님이라고 불러줘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리고 둘째, 씌울 프레임이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한다. 생선가게 점원이 선생님이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까닭은,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지닌 긍정성에 있다. 만약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가 더러운 무엇이라면, 그는 결코 '선생님 프레임 씌우기'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 씌우기의 개념을 '진보정치의 대중화'라는 문제로 가져와 보자. 살펴본 것처럼. 한번 규정된 것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규정되어지지 않는다. 즉, 보수주의자를 진보주의자로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에 진보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는 세칭 '무당파'로 불려지는 아직 규정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구애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질 않는다. 진보라는 단어가 매력의 이미지를 갖고 있질 못한 것이다.

제아무리 정당이름에 '진보'를 뺀들, '진보정당'이라는 큰 꾸러미는 벗어날 수 없다. 이름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어차피 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이다. 이석기 사건 등으로 인하여 진보라는 단어가 바닥에 떨어진 것 나도 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어찌하고 있는가? 그 단어를 다시 주워다 쓰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계속 진보라는 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아예 진보라는 단어자체를 섹시하게 '재브랜딩'하는 것이 낫다.

같은 말이라 하여도 '추녀'가 하는 말과 '미녀'가 하는 말은 다르다. "정책선거가 필요하다."는 말은 못난 정당들의 푸념일 따름이다.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의 주문(呪文)일지도 모른다. 정책으로 승부를 보고 싶거든 이미지부터 가꾸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 한창 유행이었던 '패션좌파' 따위의 귀여운 담론들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인한 것일 테다. 어쨌든, 진보는 좀더 예뻐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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