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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시위에도 밥 한 공기 뚝딱…'존재 자체가 증언' 박필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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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위안부는 가짜'라는 망언이 이어지고, 평화의 소녀상은 가려졌다. 그러나 '싸움꾼 할머니들' 앞에서는 이들의 망언도 속수무책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거친 욕설이 섞인 불호령으로, 다른 나라 전시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때로는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 자체로 싸워왔다. 남은 생존자는 5명뿐이지만, 이들의 싸움을 이어받은 후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광복절 기획 <싸움꾼 할머니들>에서 정의기억연대 소장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피해자로만 기억돼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주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싸워 온 모습을 4회에 걸쳐 조명한다.

[싸움꾼 할머니들③]
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5명 중 1명 박필근 할머니
집 앞까지 찾아온 혐오 시위…"일본 안 갔는 걸 갔나 하나"
100세 한 달 앞둔 할머니, 밥 한 공기 뚝딱·화투도 척척
60대 아들 "고생해서 삐뚤어진 엄마 손 아름다워"
"엄마, 일본 사죄 옳게 받으면 눈을 꼭 감고 가겠다고 해"

지난달 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가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 김지은 기자지난달 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가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 김지은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일본 두들겨 패는 놈은 나 하나"…욕쟁이 할머니의 불호령
②[단독]"우리 같은 여성들 돕고 싶다"…연대로 싸운 김복동·길원옥
③혐오시위에도 밥 한 공기 뚝딱…'존재 자체가 증언' 박필근 할머니
④"끝나지 않은 전쟁 우리가 이어간다"…싸움꾼 할머니들의 후예
"어머니가 '미친X들, 내가 일본에 안 갔는 거를 갔나 하나. 그렇게 고생하고 왔는데 도대체 어디서 와가 그런 짓을 하노' 이 카더라고"

지난해 5월 극우 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집 앞까지 찾아왔다. 이들은 일장기를 들고 확성기를 통해 '위안부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박필근 할머니의 아들 60대 남모씨는 이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할머니를 차에 태운 뒤 집을 떠났다. '왜 갑자기 도망가느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남씨는 "엄마 일본에 끌려가서 고생한 거 그거 거짓말이라고 하는 놈들이 여기 와서 시위한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내가 일본에 안 갔는 거를 갔나 하나"라고 덤덤하게 말했고, 놀란 와중에도 영양제 주사를 맞은 뒤 2시간 만에 기력을 회복했다. 취재진이 할머니가 사는 포항을 찾은 지난달에도 할머니는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화투를 치며 꿋꿋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살아남아 "위안부는 가짜"라는 망언 앞에서도 존재 자체로 사실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100세를 한 달 앞둔 박필근 할머니가 지금 싸우는 방식이다.

강직하게 살아온 흔적, '굵고 삐뚤어진 손'

다른 사람들 앞으로 반찬을 다 밀어주면서 식사를 하는 박필근 할머니. CBS 씨리얼다른 사람들 앞으로 반찬을 다 밀어주면서 식사를 하는 박필근 할머니. CBS 씨리얼
"고생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지고 이제 죽을라나 보다"

이번 추석이 지나면 만 100세가 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오른 지난달 11일 경북 포항에서 만난 박필근 할머니는 여전히 강한 생활력을 보여줬다.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챙기고 걱정하며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고디탕' 식당을 찾은 할머니는 취재진과 정의기억연대 활동가 쪽으로 반찬을 연신 밀어줬다. 호박나물, 오이나물, 미역줄기 등 가리는 것 없이 반찬을 집는 할머니의 젓가락질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밥을 반쯤 먹었을 때 할머니는 이미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건강하고 힘 있는 모습에 식당 사장부터 함께한 사람들까지 모두 미소를 지으며 안도했다.

"40, 50, 60, 70, 80, 100."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민화투를 치겠냐는 활동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패를 한 손에 쥐고 빠르게 섞은 뒤 취재진에게도 나눠줬다. 한 판이 끝나면 점수 계산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1분도 되지 않아 네 사람의 점수를 줄줄 읊은 할머니는 곧바로 다음 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틈틈이 맞은편 벽에 높게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집은 어디서 왔나?"고 묻더니 "서울은 천리만리다. 집에 몇 시에 가노"라며 해지면 위험하니 빨리 가라고 다섯 차례 넘게 당부했다.

박필근 할머니의 손. 젊은 시절 고생한 흔적이다. CBS 씨리얼박필근 할머니의 손. 젊은 시절 고생한 흔적이다. CBS 씨리얼
박필근 할머니의 강인함은 그동안의 고생에서 비롯됐다. 이날 할머니는 뼈마디가 울퉁불퉁 튀어나온 자신의 손을 계속 가리켰다. 아들 남씨는 "젊을 때 너무너무 일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는 유독 남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다 하셨다. 저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해 와 톱질하고 도끼질하고 또 낫질하고 그렇게 잠시도 안 놀고 일한 결과물이다"라며 "손 마디마디가 다 이렇게 뼈가 튀어나오고 굽어졌다"고 말했다.

남씨는 어머니를 "강직하신 분"이라고 표현하며 "내가 굶어죽더라도 남한테는 빌리는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남씨는 "일본 가서 갖은 고초를 겪고, 또 결혼해서도 원만하지도 않고, 또 자식들도 7명이나 낳았는데 다 잃어버려 뼈에 사무쳤다"며 "남의 남은 물건을 손톱만큼이라도 갖고 오면 꾸짖고, 남한테 해로운 소리도 못하게 시키면서 우리 남매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손은 젊은 시절엔 고왔지만 지금은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머니가 이 손으로 우리들을 키워서 고생했구나 싶다"며 "마디가 굵고 삐뚤어졌어도 곱디고운 손보다도 더 나한테는 아름답고 귀한 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본의 사죄 옳게 받으면 눈을 꼭 감고 가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아들 남모씨가 일본의 사죄를 꼭 받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CBS 씨리얼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아들 남모씨가 일본의 사죄를 꼭 받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CBS 씨리얼
"일본놈이 독종이다. 내가 일본에 가가지고 갖은 고초를 겪었다"

혼자 남매를 키우며 강직하고 악착같이 살아온 박필근 할머니는 아들이 스무 살이 됐을 때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남씨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그제야 "내가 일본 가서 호되게 당했다. '위안부'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당겼다. 탈출도 몇 번 하다 실패했고 부산을 통해 보름 만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제 초등학생과 중학생 손주를 둔 남씨는 손주들에게도 "증조 할머니가 일본에 가서 이렇게 고생을 많이 했다. 알고 있어라"라며 박필근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려줬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지만, "한 핏줄인데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고, 떳떳하게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남씨는 설명했다.

남씨는 극우 단체가 지난해 집 앞까지 찾아와 시위를 벌이고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하며 망언을 쏟아낸 데 대해 "뼈가 녹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그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우리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면 지금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실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지금도 늦었지만 (일본 정부가) 한 분이라도 더 돌아가시기 전에 보상은 나중에 하고 진정한 사죄 한마디라도 할머니들한테 와서 해줬으면 한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박필근 할머니는 얼마 전 남씨에게 "내가 일본한테 사죄를 옳게 받으면 눈을 꼭 감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씨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죄송하다' 이 말 한마디라도 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눈을 감고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래 하면 할머니들도 다 인간인데 용서 안 하겠습니까? 제발 일본 총리께서 우리 할머니들 위해서 사죄 한번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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