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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 개처럼 울었어요" 70년만에 입 연 히틀러 '기미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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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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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면 개처럼 울었어요."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독살을 막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기미상궁' 마르고트 뵐크(96)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7일 전했다.

히틀러의 검식관이었던 15명의 여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뵐크는 16일(현지시간) 밤 독일 RBB TV방송에 출연해 70년간의 침묵을 깨고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뵐크는 나치당원이 아니었음에도 검식관이 된 것은 우연히도 속칭 '늑대소굴'로 불리던 독일군 동부전선 사령부의 인근 소도시파르치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열렬한 나치당원인 시장이 뵐크를 포함한 15명의 젊은 마을 여성을 검식관으로 정했으며 매일 아침 친위대(SS)가 특별 버스로 이들을 사령부로 데려가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먹어보게 했다는 것이다.

1917년 독일 철도 노동자의 달로 태어난 그녀는 아무런 걱정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고 나치가 1933년 집권하기 전까지는 유대인 친구들도 있었다.

1941년 거주하던 베를린의 아파트가 폭격을 당했고 남편 칼의 징집으로 갈 곳이 없던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인 파르치로 간 것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뵐크는 영국이 히틀러를 독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꾸준히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모두 채식이었다. 그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우리에게 쌀과 국수, 후추, 완두콩, 양배추 등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뵐크는 "우리는 음식을 모두 먹은 다음 1시간을 기다렸고 그때마다 몸에 이상이 생길지 몰라 불안했다"면서 "살아있다는 것이 매우 기뻐서 개처럼 울곤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히틀러를 직접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사령부의 경비가 삼엄했지만 어느 날 밤 한 SS대원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944년 7월20일에는 일단의 독일군 장교들이 사령부에 폭탄을 터뜨려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것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료 검식관 여성들과 벤치에 앉아있었다는 뵐크는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을 듣고 벌떡 일어났으며 누군가 "히틀러가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실패로 끝난 이 사건으로 약 5천명의 독일인이 나치에 처형됐다.

소련군이 진격해오던 1944년 말 25살의 뵐크는 친절한 SS대원의 도움으로 탈출,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사용하던 열차에 겨우 올라타 폐허가 된 베를린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검식관으로 일하던 다른 여성들은 소련군에 체포돼 총살됐다.

그러나 베를린이 1945년 5월 소련군의 수중에 넘어가자 살아남은 뵐크에게도 수난이 계속됐다.

뵐크는 "모두들 나이 많은 여자처럼 옷을 입으려 했다"면서 그러나 소련군의 성폭행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우리 옷을 찢어버리고 한 의사의 아파트로 끌고 갔다. 거기에 갇혀서 14일간 성폭행당했다. 현실의 지옥이었다. 이 악몽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뵐크는 그 충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됐다.

"늘 딸을 바랬다. 50살 무렵에는 딸이 있었다면 25살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노먼이라는 이름의 한 영국군 장교가 그녀의 회복을 돌봐주었다. 노먼은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으로 돌아와 삶을 함께하자는 편지를 보냈지만 뵐크는 남편 칼이 살아있는지를 알고 싶다고 답했다.

1946년 소련군에 포로가 됐던 칼이 그녀의 아파트 문앞에 나타났다. 칼은 몸무게가 45㎏에 불과할 정도로 말랐고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어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뵐크는 악몽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결국 둘은 갈라섰다.

칼은 24년 전 세상을 떠났다. 뵐크는 치욕스런 과거의 기억을 안은 채 그녀가 태어났던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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