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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기독 독립운동가 - 이회영, 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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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려놓는 의연한 태도 되새겨야

[앵커]

요즘 항일투쟁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에 나섰던 기독 신앙인들도 적지 않은데요,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기독 독립운동가들을 세차례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명문가 출신으로 전재산을 다 털어 독립운동에 나선 이회영 선생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제 경찰 천명과 홀로 맞선 김상옥 선생을 천수연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조선시대 명문가 집안 출신인 우당 이회영 선생은 1895년 을사늑약 이후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지원했던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07년 비밀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만들고, 고종의 헤이그밀사 파견을 주도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헤이그밀사 사건이 실패하면서 만주로 망명해 해외에서 독립운동 지원에 나섭니다.

대표적으로 독립군 군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광복군 양성에 힘썼고, 이후에도 항일운동 조직인 의열단과 다물단 등을 창설하는 등 끊임없이 항일단체를 조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기독교 신앙은 상동교회에서 다져졌습니다.

전덕기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상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상동교회내 상동청년학원 학감으로 근무하면서 청년교육에 힘써왔습니다.

특히 이회영 선생을 포함한 여섯 형제가 만주로 망명할 때 재산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일화는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계산하면 6백억원에 달하는 큰 돈이지만, 내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데 연연하지 않았던 그와 가족들의 결단은 여전히 존경할만한 신앙인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회영 선생처럼 부유하고 좋은 집안은 아니었지만 자기 것을 기꺼이 내려놓은 또 다른 기독 항일운동가도 있습니다.

1923년 당시 34살이던 김상옥 선생은 독립운동 탄압에 앞장섰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후 수배에 쫒기다가 지금의 종로구 효제동에서 홀로 일본군경 1천 여 명과 시가전을 펼칩니다.

16명을 사살하고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발로 자결해 순직한 김상옥.

가난 때문에 공부할 수 없었던 그는 동대문교회에서 공부하며 손정도 목사의 가르침 속에서 신앙과 독립운동의 의지를 키웠습니다.

대장장이 일을 하며 재산도 모으고 가정도 꾸렸지만 일본의 잔혹한 학살 사건을 접하며
김상옥은 혁신단을 조직해 생명을 내건 무력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인터뷰] 류명균 팀장 /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죽음을 무릅쓴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맞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신앙과 마음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위기 앞에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신앙 선배들의 의연한 태도는 한국교회가 되새겨야 할 자셉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채성수="" 편집="" 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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