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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선균이 생각하는 '선을 넘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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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기생충' 박사장 역 이선균 ①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선균을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사에 선을 딱 지켜. 내가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자수성가한 글로벌 IT 기업의 CEO 박사장(이선균 분)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다. 말이 그리 많지 않은 그가 영화 안에서 내내 강조하는 건 '선'이다. 집안일을 돕는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자신이 생각한 '선 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을 지녔다.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꿈꿔왔던 일이 실현돼 너무 벅찼다면서 "시켜만 주시면 뭐든 다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단다. 그동안 봉준호 월드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이라는 신선함에, 그는 오랜 시간 다져온 노련한 연기로 박사장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은 어떤 질문에도 호쾌한 답을 내놨다. 본인이 해석한 박사장이라는 캐릭터, 관객으로서 본 '기생충'이라는 영화, 거의 처음으로 '본격 부자' 역을 해 본 소감까지.

다음은 일문일답.

▶ 봉준호 감독에게 섭외가 들어왔을 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왜 안 믿었나.

너무나 하고 싶었던 작업이었고 어쩌면 꿈꿔왔던 일이다. 저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나한테 현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었다. 그런 제안이 저한테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모든 배우가 너무나 그분과 작업하고 싶어 하지 않나. 저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살인의 추억'을 얘기하는데 그 두 분(봉준호 감독-송강호)과 함께한다는 게 너무 영광스러웠다. 대학교 합격하고 좋아했던 그때처럼 너무 벅찼던 것 같다.

이선균은 자신이 맡은 박사장을 "누구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되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봉 감독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는 작품 이야기를 하는 걸 쑥스러워한다고 하더라. 배역을 제안받을 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대본은 못 봤다. 그때도 확실히 하자고 얘길 한 건 아니고 한 번 미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저희) 사무실도 '하자는 뜻인가?' 이랬다. (웃음) 정확히, 명확히 말하지는 않고 가자마자 '이런 두 가족 이야기가 있고 거기에 부잣집 아버지 역할을 맡기고 싶다'고 하셨다. 가자마자 '어후~ 예. 감독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 말밖에 안 나오더라. 대본 궁금한 것도 없고. '(극중) 고3짜리 딸이 있는데 선균 씨가 나이가 어려 보여서 괜찮을까?' 하셨는데, 염색하라면 흰머리도 하겠다고 구차하게 어필하면서… (일동 웃음) 시켜만 주시면 뭐든 다하겠다고 했다. (웃음)

▶ 봉 감독이 본인(이선균) 왼쪽 얼굴이 좋았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했는데. 혹시 촬영할 때도 왼쪽 얼굴에 집중한다는 걸 느꼈나.

감독님이 그냥 평상시에도 배우들 사진을 엄청 많이 찍으시더라. 처음 미팅할 때도 되게 관찰을 많이 하시고. 각도도 보시고. 저 좋아하라고 얘기하신 거 같다. 첫 촬영이 2회차였는데 강호 선배랑 같이하는 차 씬이었다. 차 씬을 다 먼저 찍었는데 카메라가 다 왼쪽에 있던 거다. 그때 타이트하게 보이는 저(의 얼굴) 느낌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주신 것 같다.

▶ 박사장은 극중에서 별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은 박동익이다. 어떤 상징처럼 직책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잘 보면 이름이 나오긴 한다, 잡지에 CEO 이름으로.

▶ 박사장이라는 인물은 어떻다고 생각했나. 박사장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부분이 있다면.

위선적이고 약간 이중적이지만 되게 열심히 살고 사람들한테도 되게 나이스하게 대하려고 하는 사람. 누구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되게 중요한 인물이다. 특별히 악한 행동을 하고 못된 인물은 아닌데, 그안에 굉장히 쪼잔함과 천박함을 가진 인물이다.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이면서, 내가 피해를 받는다고 (그걸) 티 내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까. 가정에도 되게 충실히 하려고 하고. 모든 거를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인물. 그 자리에 오른 것도 자기 노력으로 만든 거라서 (타인에게) 좀 더 우월의식이 있는 것 같다.

극중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박사장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박사장은 어마어마한 부자다. 집 크기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연기할 때 어땠는지.

일단은 공간이 너무 크다 보니까, 거기서 처음에 움직이는데 약간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것 같더라. 공간에 눌리는 듯한 느낌? 우리는 공간이 되게 중요한 영화고, (박사장네 집이) 무대이기도 하다. '나의 아저씨' 끝나고 바로 이 영화에 들어오다 보니까 '내가 약간 (부자 역할에) 어울리나?' 싶더라. '나의 아저씨' 6개월 찍다 보니까, 과연 어울리나 싶고 옷이나 환경이 좀 어색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가지고 (부자 연기는 처음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다. 사실 세트장이 너무 좋아서 거기서 잘까도 고민했다. (일동 웃음)

▶ 박사장은 강박증이 있어 보일 만큼 '선을 지키는 것'에 집착한다. 선을 넘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게, 어떤 자기 기준이라고 본다. 자기가 만든, 보이지 않는 선. 박사장은 특히 굉장히 강박이 심한 인물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만큼 나한테 (타인이) 어떻게 대하는지가 되게 중요한 인물이라서 심하게 강박적으로 군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살면서 그게(선이) 있지 않나. 그 말이 되게 웃기기도 하지만 (우리를) 돌이켜 보게 만드는 것 같다, 선을 넘지 말라는 게. 우리가 다 평등하다고 얘기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계급이 있는 거니까.

▶ 영화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다. '사모님, 사랑하시죠?' 하는 장면에서 박사장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개인적인 것이지 않나. 그 질문이. 거기다 그전에 와이프 요리 못한다고 그렇게 욕을 하고 있는데. (웃음)

▶ 박사장은 자기 차 안에서 낯선 팬티를 발견했을 때도 뭔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챌 만큼 예민한 사람이다. 그런 박사장이 자기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갔나.

감독님이 (제가) 등장할 때부터 요구하셨던 대표적인 게 '피곤함'이었다. 피곤함을 계속 보이면 좋겠다고. 집에 오면 되게 자기 할 걸 하고 싶지만, 일단은 계단 올라올 때부터 얼굴에 피로가 있는. (집안일에) 큰 관심이 없었겠지. 그 피곤함을 아니까 연교(조여정 분)는 빨리 (자기 방에) 올라가라고 하고. 감독님이 제시카(박소담 분) 처음 만나서 얘기할 때도 피곤에 쩔어서 얘기하고 무심한 듯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선균은 '기생충'에서 연교 역의 조여정과 부부 연기를 했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기택네 가족에서 남편 기택(송강호 분)과 충숙(장혜진 분) 관계가 대체로 수평적이었던 것과 달리, 박사장네는 수직관계가 바로 보였다.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나갔나.

대본에 너무 잘 나와 있어가지고… 근데 원래 연교가 저를 대할 때도 좀 더 존칭을 하고 그랬다. 여정 씨랑 첫 촬영할 때 '아, 이건 너무 문어체 같다'고 감독님이 그러셨다. 나이에 비해 큰딸이 있으니까 대학 때 만나서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면, 좀 더 편하게 얘기하지 않을까 싶어서 촬영 첫날 (말투를) 좀 바꾼 거다. 원래 연교랑 처음 (얘기)할 때 (딱딱한 말투로) 이렇게 하면 좀 더 강압적이고 변태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첫 촬영에서) 그게 다 무너져가지고 약간 헷갈렸다.

그다음부터는 현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유연하게 가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가야겠다 생각했다. (웃음) 그다음부터 (정해 온 설정이) 깨질 때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서. 근데 그다음부터는 설정이 변한 게 없다. 그냥 어미 변화 정도? 첫날만 '이 캐릭터 잘 만들어야겠다! 잘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있었는데 그게 무너지니까 그다음부턴 뭐… (웃음)

▶ 혹시 박사장도 연교처럼 영어를 쓰는 설정이 있었는지.

저도 영어를 쓰고 싶은데 연교처럼 보일 것 같아서 (웃음) 최대한 자제했다. 처음 만나서 리딩할 때부터 너무 웃겨가지고. (조여정 씨가) 너무 잘했다.

▶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과 호흡은 어땠는지. 조여정은 자기 배역에 확 몰입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제가 어떻게 했다기보단 상황 캐릭터가 명확하게 있다 보니까… 그리고 여정이는 미혼이고 저는 기혼이다 보니, 애들하고 관계를 어떻게 할지 제 얘기를 좀 했던 거다. 예를 들면 '애들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얘기 안 해' 이런 거? 엄마가 여러 모습이 있지 않나. 육아하다 보면 화를 냈다가 짜증 냈다가 또 미안해서 안아주고… 그런 걸 얘기했다.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기생충' 배우들은 같이 있을 때 특히 즐거운 얼굴인 게 눈에 띄더라. 현장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던데.

그냥 정말 가족 같았다. 촬영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작년) 이맘때부터 찍은 거니까. 계속 제가 얘기하지 않나. 패키지여행 갔다 온 것 같다고. 촬영할 때도 내 분량 찍고 가는 게 아니라 지방 촬영할 때도 같이 머물고 같이 밥 먹으면서 정말 가족처럼 된 것 같다. 누구 한 명이 이끌고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다 개성이 다른데 감독님이 너무 조율을 잘해주셔가지고… 각자 역할이 있던 것 같다. 감독님은 정말 아버지처럼 판을 잘 만들어주셨다고 해야 하나. 저는 약간 삼촌 같은 느낌이고. (웃음) 대가족 같았다.

▶ '기생충'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완성된 영화로 보고 나서 느낌이 달랐는지 궁금하다.

너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 활자로 다가오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미술, 영상, 음악 합쳐져서 볼 때 여러 가지 내포됐던 상징과 비유들,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더 다가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두 번째 보는데 강호 형이 '너도 다 계획이 있구나?' 할 때 너무 먹먹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 말이. (취객이 기택네 집에) 노상 방뇨해서 둘(기택-기우)이 신나가지고 물 뿌리고 할 때도 기우가 맞지 않나. (웃음) 이것도 어떤 복선인 건가? 대본에 물 뿌린다고 나오는데 그런 것도 다 계산이 있던 건가? 처음엔 굉장히 코믹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는데, 한 번 더 보면 몰랐던 게 보이는 것 같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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