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는 브래드 버지스 리빙 시어터 대표. 엘로밤 제공20세기 최고 실험극단 중 하나로 꼽히는 리빙 시어터가 연극 '로제타' 시범공연을 오는 13~14일 광주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극장2에서 선보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국제공동 창·제작 공연사업의 하나로, 옐로밤과 극공작소 마방진이 제작에 참여했다.
작품은 실존인물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의 삶을 다룬다. 미국 출신 의료선교사인 로제타는 구한말 한국에서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정당한 권리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1894년 평양에 국내 최초 맹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했고, 1898년에는 여성치료소 광혜여원을 열었다. 그가 제작한 평양여맹학교 한글점자 교재는 지난 5일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리빙 시어터 출신인 요세프 케이(김정한) 연출은 6일 서울 영등포구 옐로우밤 연습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마포구 절두산 순교성지를 방문했을 때 로제타의 일기에 한글로 '나, 길을 모르겠사오니 하느님 도와주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말이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로제타의 삶은 신산(辛酸)했다. 의료선교사였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전염병이 창궐한 평양에서 발진 티푸스로 사망하자 로제타는 갓 돌이 지난 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딸을 결핵으로 잃었다.
요세프 케이 연출은 "한국말도 모르고 의약지식도 부족했을 25살 로제타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다"며 "한 사람의 아름다웠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을 이해하기 보다는 경험하길 바란다. 그의 삶을 우리 몸을 통해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공작소 마방진 고강민 대표는 "로제타의 국적을 떠나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연극에는 리빙 시어터의 외국인 배우 3명(브래드 버지스·토마스 워커·에마 수 해리스)과 극공작소 마방진의 배우 5명 등 총 8명이 무대를 누빈다. 특히 8명 모두가 돌아가며 로제타를 연기하고, 자막 없이 한국어와 영어 대사가 혼재하는 형식이 독특하다.
배우 겸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는 버지스 리빙 시어터 대표는 "로제타의 삶을 축복하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마음에 '당신도 로제타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뛰어난 연출과 세련된 무대 구성 덕분에 자막이 없어도 언어 장벽을 느끼지 못하는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1947년 줄리안 벡과 주디스 말리나가 창단한 리빙 시어터는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의 초석을 다진 극단으로,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명배우들이 거쳐갔다.
요세프 케이 연출은 리빙 시어터에 대해 "특정 극장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했다"며 "돈과 명예를 떠나 진실된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고 말했다.
연극 '로제타'는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올해말 또는 내년초 본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4~2025시즌에는 미국 뉴욕에서 공연할 계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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