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 미아역 인근 마트에서 일면식도 없는 6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이 범행 직후 담배를 피우며 직접 112에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 두 명을 찔렀다'고 태연하게 자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 남성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범행 동기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평일 저녁, 일상의 공간인 마트가 순식간에 칼부림의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시민들은 크게 불안해 했다. 해당 마트에는 숨진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발걸음도 이어졌다.
환자복 입고 술 마신 뒤 칼부림…경찰, 구속영장 신청
서울 강북경찰서는 23일 '마트 칼부림' 피의자인 30대 남성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22일 오후 6시 10분쯤 서울 미아동의 한 마트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장을 보던 60대 여성을 숨지게 하고, 40대 여성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들은 모두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60대 여성은 중태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40대 여성은 부상을 입고 입원 중이다.
마트 인근 폐쇄회로 (CC)TV에 포착된 A씨는 범행 직후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며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112에 직접 전화해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붙잡았다. 체포 과정에서 저항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손가락에 부상을 입고 인근 정형외과에 입원 중이었는데, 사건 당일 마트로 향해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환자복을 입은 채 매대에 진열돼 있던 술을 마신 뒤 마트에서 판매 중이던 칼의 포장지를 뜯어 여성 2명을 향해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이후에는 사용한 흉기를 과자 진열대에 놓았다.
범죄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A씨의 정신질환 여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무직인 A씨는 가족과 함께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마약 등 약물 검사를 진행하는 한편 확보한 휴대전화 포렌식도 진행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신질환 병력, 범행 동기 등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마트에서 사람을 두 명 찔렀다"…태연하게 112 신고로 범행 자백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건 당일 112신고 녹취록에는 A씨의 범행 자백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범행 직후인 오후 6시 19분쯤 A씨는 경찰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여기 위치추적 해보시면 안돼요? 사람을 찔러가지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트에서 사람을 두 명 찔렀는데요"라고 말을 이어가자 경찰이 "누가요"라고 물었고, A씨는 "제가요. 방금"이라고 답했다. 경찰이 구체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추가 질문을 하자 A씨는 찌른 2명 모두 여성이라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자진 신고 전화는 2분간 이어졌다.
당시 112에 접수된 해당 사건 신고 전화 9건의 녹취록에는 A씨와 달리 긴박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목격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오후 6시 18분쯤 한 신고자는 경찰에게 "칼로 찌르네. 아이고 미치겠네. 저거"라며 "아 빨리 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또 다른 신고자는 "여기 가게에 (여성이) 칼로 찔린 거 같아요"라고 말했고, 경찰이 정확한 위치와 상황을 묻자 "나 무서워. 가야 되는데, 집에 가야 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6시 19분쯤 신고한 목격자도 "남자가 여자를 칼로 찌른 것 같아요. 빨리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했고, 경찰이 출혈이 있는지 묻자 "못 가겠어요. 무서워서. 헉, 출혈이 있나봐요. 손이 빨개"라고 답했다.
"이런 끔찍한 일이"…참담한 동네 주민들
사건 발생 이튿날인 23일 저녁 6시 30분쯤, 해당 마트는 천막으로 가려져 굳게 닫혀 있었다. 천막을 둘러싼 끈에는 흰색 국화꽃 6송이가 끼워져 있었다. '투박하지만 정이 많은 이 동네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요.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돌아가신 우리 이웃 아주머니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 드립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추모 메모지도 붙었다.
23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마트 천막에 흰색 국화꽃과 함께 추모 메모지가 꽃혀 있는 모습. 김수정 기자마트 바로 맞은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재길(61)씨는 아침에 꽃집에서 국화꽃을 사 마트에 꽂아두었다고 말했다. 당시 범행 상황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는 이씨는 "어제는 놀라기만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현실로 다가왔다"며 "서현역부터 시작해서 매해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마트 앞을 지나다가 잠시 멈춰서는 주민들도 많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성은 잠시 서서 한참 동안 쪽지를 읽었다.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하고 있던 40대 남성 김모씨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기도 드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참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또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아동 주민 이창민(57)씨도 "살기 좋은 동네고, 사고도 없는 동네인데"라며 "아내에게 항상 어두울 때는 큰길로 다니라고 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