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군 병력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철수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비상계엄 당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간부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에게 '국군방첩사령부의 체포조 운용'을 언급하며 이들을 인솔할 경찰 명단을 요구하는 내용이 공개됐다. 두 사람의 통화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되면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29일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 등 경찰 지휘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4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박창균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과 이현일 전 국수본 수사기획계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박 전 과장과 이 전 계장은 12·3 비상계엄 당일부터 다음날까지 방첩사를 인솔할 수사관 10명의 명단을 방첩사에 넘기는데 관여한 인물들이다.
이날 법정에서는 계엄 당시 이 전 계장과 박 전 과장이 통화한 녹음 파일 9개가 두 차례 재생됐다.
이 전 계장은 박 전 과장과의 통화에서 "지금 방첩사에서 국회에 체포조를 보낼 거다"라며 "현장에서 방첩사 2개 팀이 오는데 인솔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 형사 5명이 필요하니 명단 좀 짜줘"라고 했다. 이어 "경찰 티 나지 않게 사복 입고, 형사 조끼 입지 말라"고 말했다. 박 전 과장이 "뭘 체포하는 거냐"고 묻자 이 전 계장은 "일이 크다. 국회 가면 누굴 체포하겠냐"라고 반문했고 박 전 과장이 크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녹음 파일에 담겼다.
실제 박 전 과장은 이 전 계장 요청에 따라 형사 10명의 명단을 보냈고, 이 전 과장은 이 명단을 방첩사 쪽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회에서 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이 의결되면서 방첩사의 체포활동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12월 4일 오전 박 전 과장은 이 전 계장에게 전화를 걸어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하셨냐. 하지 말라고 했어야 한다", "이상한 거 시키려고 하셨지 않으냐"라고 말하자 이 전 계장은 이에 "아무것도 안 했잖아"라고 답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치안감)이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검찰은 형사들로 명단을 구성한 이유와 경찰의 역할 등에 대해 물었고, 박 전 과장은 "형사과 소속 경찰들이 현장에 나가 있어 형사들로 명단을 짠 것"이라며 "방첩사 소속 군인들을 안내하거나 지원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박 전 과장은 '국회의원 등 정치인 체포가 목적이 아니었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계엄이 어쨌든 발동된 상황에서 집단 폭동,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런 것에 대비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전 과장은 '한숨의 의미'를 묻는 검찰 질문에는 "인원만으로 많은 인원들 사이에서 체포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서 "제가 통솔하는 인원이 다른 업무를 위해 빠져나가는 상황에 대해 한숨을 쉬었다"고 답했다.
박 전 과장에 이어 이 전 계장에 대한 검찰 측 주신문이 진행됐다. 이 전 계장은 당시 방첩사가 누구를 체포하러 간다고 생각했느냐는 검찰 질문에는 "국회 근무하는 여러 사람들"이라며 "국회의원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신문 과정에선 계엄 당시 영등포서가 서울청으로부터 유치장을 준비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박 전 과장은 "(계엄 상황이) 끝나고 듣기로는 대규모 피의자 체포, 인치 상황 있을 때 대비해서 유치장을 준비해두라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검찰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문과 군사법원에서 재판 중인 군 관계자들 증인신문조서, 비상계엄 관련 국회 국정조사특위 회의록을 증거로 신청하기도 했다.
한편 재판부는 오는 10월 말까지 경찰 수뇌부 내란 사건의 공판기일을 지정해뒀다. 다음 달 21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선 이 전 계장의 증인신문을 마무리한 뒤 전창훈 전 국수본 수사기획담당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