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제2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이 다시 전 세계에서 대유행할 경우를 대비한 '팬데믹 협약'이 20일(현지시간) 정식으로 채택됐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연례총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팬데믹 협약 채택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지난 19일 이뤄진 투표에서는 125개국이 찬성한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폴란드와 이스라엘, 이탈리아, 러시아, 슬로바키아, 이란 등 10개국만 기권 의사를 밝혔다.
이어 20일에는 표결 없이 의장이 전체 회원국 대표들을 대상으로 이의 여부만 묻는 방식으로 타결이 시도됐고, 어느 나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협약이 공식 채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협약에는 팬데믹이 또다시 발생할 경우, 보호장비 조달을 상호 조율하고 사람과 동물을 아우르는 질병 감시체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저소득 국가도 백신과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관련기술을 이전하는 길을 열어놓는 등 전 세계 어디에서도 팬데믹에 대항 가능한 치료 수단과 백신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가령 이번 협약에 참여하는 의약품 제조업체는 팬데믹 재발 시 자사가 생산하는 백신과 약, 진단키트의 20%를 WHO에 할당해 저소득국가 국민의 치료를 돕게 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이 협약은 공공보건과 과학, 다자간 행동의 승리"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팬데믹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집단으로, 더 잘 지킬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앞서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유래한 코로나19는 2023년 5월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할 때까지 약 700만 명에 가까운 인명 피해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백신·의약품을 사재기하거나 과잉 비축해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빈곤국들의 고통이 가중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WHO의 이번 팬데믹 협약은 비슷한 상황의 재발을 막자는 합의에서 도출된 결과인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회원국들이 협약을 준수하지 않을 때 제재할 수단을 명확히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엔 한계가 분명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WHO 탈퇴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 이번 협약을 '공수표'로 만들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미국은 WHO 예산 5분의 1을 책임져 왔고, 지난 2년간 WHO가 모금한 긴급 자금의 34%를 기부했다. 올 1월 WHO에 탈퇴를 통보한 미국은 관련 규정에 따라 내년 1월 말 정식으로 WHO를 탈퇴하게 된다.
한편, 이번 협약은 병원(病原) 정보 공유 등과 관련한 쟁점을 다루는 부속서 내용에 대한 추가협상에 회원국들이 합의할 때까지 발효되지 않는다. 이 협상은 올해 7월 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