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저는 공수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거든요. 지금 검사가 너무 없어요 공수처 안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난달 15일 유튜브 채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공수처를 폐지하고 헌법재판소를 개혁하겠습니다.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겠습니다."(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난달 18일 공약 발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둘러싼 대선 주자들의 공약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대선 결과에 따라 공수처가 존폐 갈림길에 서게 된 건데, 무조건적인 '확대'나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 공수처의 근본적인 한계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명무실' 공수처가 '존폐' 논란 자초했나
25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수사 인력을 확대하는 등 공수처의 역량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경우, '공수처 폐지'라는 정반대의 공약을 내걸었다.
'존폐'를 다투는 이러한 공약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공수처의 '부실한 수사력'이 있다. 2021년 출범 이후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중 유죄가 확정된 사건이 아직 없다. 조희연 전 교육감 해직교사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의 경우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이는 공수처가 넘긴 사건을 검찰이 추가로 수사해 기소한 사건이다.
유일하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고발사주' 사건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그외에도 해병대 채모상병 순직 외압 사건이나 세관 마약 외압 사건 등도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수사만 진행 중이다.
이후 국민들에게 결정적인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12·3 내란사태'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아쉬운 수사력이었다. 당시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이 결국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사유가 됐다.
재판부는 당시 "공수처는 수사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직권남용죄 수사 과정에서 내란죄를 인지했다고 볼만한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피고인 측에서 주장했다며 "(이에 대해) 공수처법 등 관련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당시 검찰과 경찰, 공수처는 '수사권 주체'를 두고 논란을 빚었는데, 공수처가 공수처법 제24조 제1항 '수사처의 범죄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처장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 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사건 이첩요구권'을 발동해 무리하게 사건을 가져오면서 일어난 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공수처의 '부실한 수사력' 논란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 공수처 설립 권고안은 공수처 검사를 최대 50명까지 두고, 임기는 6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게 권고했다.
하지만 현재 공수처는 검사 25명에 임기는 3년으로 단축됐다. 적은 인원과 불안정한 임기로 인해 부실한 수사력은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수사 가능 범위와 기소 가능 범위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비롯해, 공수처가 수사권만 가지고 있는 사건의 경우 경찰, 검찰과 공수처 간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협의가 어렵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법조계 "공수처 폐지가 능사는 아냐…전격 쇄신해야"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윤창원 기자다만 법조계에서는 '폐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타파하고 검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견제하기 위한 설립 목적의 타당성 등을 고려했을 때 공수처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범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기관을 폐지하기 보다는,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인력과 제도를 정비해 제대로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들어진 기관을 바로 폐지한다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며 "기소 대상 사건과 수사 대상 사건의 범위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수사 대상 사건과 기소 대상 사건이 일치되지 않을 경우에는 쟁점이 생길 때마다 검찰과 공수처가 빨리 법률적인 조율을 미리 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애초 공수처 도입시 경찰, 검찰, 공수처가 유기적으로 협조해서 수사를 원활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따라서 세 개 기관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준을 대통령이나 총리가 정해서 이끌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검경개혁소위원장 또한 "공수처의 수사권과 대비해 기소권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며 "만약 공수처의 권한 남용이 우려된다면, 공수처에 수사 및 기소 심의 기구를 만들어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이 위원장은 검찰, 공수처, 경찰 등 수사기관 간의 충돌 및 불협화음의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사건 관할이 불분명할 경우 정기회의를 열어 부패 범죄 대책을 세우고 개별 사건을 배분하는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SFO)를 참고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