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명 정부가 출범 뒤 받아든 첫 번째 숙제부터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이라면 피할 수 없다는 '집값 안정' 과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폭등세까지는 아니라지만 심상치 않은 수치들이 등장한지 오래다.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몰리는 서울 집값은 더욱 요동이다. 한국부동산원 '6월 2주(9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이 주 0.26% 올랐다. 무려 19주째 상승세가 그칠 줄 모른다.
앞선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치러야 했던 대가를 기억하기에 이재명 정부는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이 직접 밝힌 집값 안정화의 뼈대는 '지속적인 공급확대'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우리 진보 정권은 기본적으로 수요 억제 정책을 했다"면서도 "일반적인 원리로, 이럴 때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만 만나면 규제에 몰두하던 과거 민주당 정권과 다른 방향성을 예고한 장면이다.
'재초환' 폐지, 양도세 완화 없는 공급 확대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의 집값 폭등 원인 분석과 대응 방향에 대해 부동산전문가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답안지도 별다를 것 없다는 설명이다. 장기적으로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3기신도시 등 새로운 주택 공급처를 발굴해 공급하는 것이 하나의 카드로 꼽히고 있다. 원자재 값 상승 등 건설사들의 수익악화로 주택 공급 자체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전임 윤석열 정부의 3기신도시 건설마저 지지부진해지자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보통 아파트를 분양하고 실입주까지 4~5년, 재개발의 경우에는 인허가까지 감안하면 10~2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윤석열 정부 때 3기 신도시 건설을 책임감 있게 추진했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제라도 용적률 완화 등의 특혜를 줘서라도 신도시 개발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신도시 개발의 경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특히 집값 상승세가 가파른 서울의 경우, 주택 건설을 위한 새로운 부지 확보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서울 주택시장 공급의 숨통을 틔워줄 유일한 방법으로 재개발 촉진이 언급되는 이유다. 상당수 부동산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의 폐지 필요성을 언급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란 재건축 조합원 인당 재개발 이익이 특정금액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예상개발 이익의 최대 50%를 정부가 관리처분인가 단계서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 속 2012년 법안 시행을 일시 중단 했다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시행이 재개됐다.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원들의 이익확보가 여의치 않게 된데다 건설경기마저 침체되면서 서울에서 부동산재개발 사업은 지난 몇 년간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재초환은 재건축을 하지 말라고 만든 법이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 공급을 확대하려면 재초환 폐지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재초환 제도는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도 한 차례 개정을 통해 부담금 부담 구간이 완화됐지만 현재까지는 재건축 시장의 냉기를 풀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빠른 시간 안에 공급확대 효과를 거두기 위한 방안으로
양도세 완화 카드도 꼽힌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진짜 집값을 잡고 싶다면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 집주인이 매물을 많이 내놓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공급확대)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중과세 감면 정도가 아닌 기본세율에서 과감하게 10%정도 낮춰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재명 부동산 대책, 가장 큰 난관은 여당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부동산 대책이 전 민주당 정권과 차별성을 보인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적 대안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이 의문을 갖는 가장 큰 지점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재초환 재검토와 양도세 감면 카드 모두 '민주당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재초환 폐지론에 대해 "시행해 본 후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해 봐야 한다"며 사실상 선을 그은 장면이 대표적이다. 진 의장은 당시 이 대통령의 선대위 정책 본부장이었다. 경쟁자였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재초환 폐지를 약속했다.
"재건축을 통해서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건 사회 공공을 위해 환원돼야 한다"는 진 의장의 이날 인터뷰 발언은
민주당에서 재초환 폐지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급의 난제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재초환 제도를 폐지할 경우 단기적으로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한 집값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신생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양도세 완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집값 폭등으로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던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실질적 집값 완화 방안으로 검토됐지만 끝내 채택되지는 않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집토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처럼 규제 일변도의 집값 대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한 전문가는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실효적 방법이 쉽지 않다. 주택시장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에 제초환 폐지나 양도세 정책 등이 필요한 것인데 이게 당론과 기조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세금규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는 금융권을 통한 대출규제가 꼽힌다. 돈줄을 죄는 것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집값 하락 뒤 폭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