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알 무카이르(Al-Mughayyir)에서 HD현대의 불도저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을 파괴했다. 이스라엘점령군은 이른 아침 마을을 습격하고 모든 입구를 봉쇄한 뒤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를 시작했고, 모인 마을 청년들을 구금했다. 부서진 집 잔해 위에서 피해자 모하메드(가명)씨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HD현대에 이스라엘과의 공모를 중단하라는 배너를 들고 있다. 자아 활동가 제공하루에도 수십 명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가다 목숨을 잃는 땅,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스라엘의 21개월째 지속된 공격 속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20일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주민들에게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해 9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민방위대는 "가자 각지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총 9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이스라엘에서 넘어온 식량 트럭 25대가 가자에 진입하자 굶주린 군중이 몰려들었고, 그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즉각적인 위협에 대응한 조치"라며 "구호 차량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 몇 달간 계속된 '배급소 총격' 사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5월 말부터 가자지구에서는 거의 매일 배급소 인근에서 총격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날 희생자 수는 최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20일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활동가 '자아'는 CBS라디오 '주말엔 CBS'에 출연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실상을 전했다. 자아는 10년 넘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저항해 온 활동가다.
"지금 현실은 언론 보도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자행하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개인은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고, 그저 버티는 것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아가 전한 현지의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부터 가자지구의 모든 검문소를 전면 봉쇄했고, 이로 인해 식량과 의약품의 반입이 차단됐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알 무카이르(Al-Mughayyir). 이스라엘점령군은 이른 아침 마을을 습격하고 모든 입구를 봉쇄한 뒤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를 시작했다. 자아 활동가 제공그 결과 620명이 숨졌고 닷새 동안 한 끼조차 해결하지 못해 굶어 죽은 어린이만 69명. 65만 명 이상의 아동이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 암 환자와 임산부 등 의료적 지원이 시급한 인구도 수만 명에 이르며, 사망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자아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하며 분노와 안타까움에 목소리를 떨었다. 그는 특히 최근 구호 활동의 중심이 된 'GHF(가자인도주의재단)'가 오히려 새로운 비극의 현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GHF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원하고 운영하는 인도주의재단이다.
"GHF가 배급을 시작한 뒤 거의 매일 사람들이 총격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배급소가 아니라 함정이었어요. 총격을 위한 설계된 장소였던 셈입니다."그는 이 모든 상황이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설계하고 집행하는 체계적 인종 말살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자아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그 구조적 이익의 고리를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은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과 불법 정착촌 건설을 뒷받침하는 54개 기업을 지목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 18개, 이스라엘 기업 12개가 연루됐고, 한국 기업 2곳도 명단에 포함됐다. HD현대와 두산(현 HD현대인프라코어)이 그 대상이다. 이들 기업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주거지와 기반시설을 철거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사용되는 중장비를 이스라엘에 수출했다.
자아는 "장비에는 두산 로고가 있지만, 현재는 모두 HD현대의 관리·책임 하에 있다. HD현대의 굴착기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과 마을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불법 정착촌이 들어서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앞서 HD현대는 "표준계약서에 인권보호 조항을 명문화했으며, 국제앰네스티에도 무관함을 소명했다"며 "현장 사용 장비는 중고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자아는
"기업은 제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책임질 의무가 있다. 이는 유엔이 정한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에 따른 국제적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HD현대가 올해 초 미국 기업 팔란티어의 AI 솔루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점에 우려를 표했다.
"이제는 단순히 굴착기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안에 실린 감시·통제용 소프트웨어까지 함께 공급되는 구조로 가고 있다. 기업이 팔레스타인 억압 시스템에 훨씬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아는 "HD현대의 전신은 한국전쟁 후 미군 막사 수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기업이 지금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것 부터가 연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선 246개 시민사회 단체가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46차 긴급행동 예고 포스터, 현재 한국에선 246개 시민사회 단체가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제공
또한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연대체는 가자지구 구호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이다. 목표 금액은 2억 원으로 현지 단체를 통해 가구당 200유로 상당의 식량과 생필품을 직접 구매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자아는 "정부와 기업이 이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게, 시민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합니다. 함께해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