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1959년 이후 66년 만에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서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8시20분(현지시간) 베이징 톈안먼에 도착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영접을 받았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두 손을 맞잡아 환대했고 펑 여사는 한국어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인민복 대신 검은 양복에 옅은 금색 넥타이를 맨 김 위원장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행사장으로 향했다. 주변에는 군악대 연주와 환영 인파가 뒤섞이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 주석과 정상들은 톈안먼 망루로 이동했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함께 맨 앞줄에서 환담을 나누며 걸어갔다. 이동 중 시 주석이 광장을 가리키며 설명하자, 김 위원장이 뒷짐을 진 채 경청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오늘날 인류는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상생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세계 각국 인민과 함께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막을 수 없다"며 항일전쟁 정신을 계승해 강국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DF)-61'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전 지구를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 전략핵미사일 둥펑(DF)-5C를 공개했다. 기존 DF-5B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DF-5C는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ICBM으로, 신화통신은 이를 "중국 전략 반격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으로 타격 범위가 전 세계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DF 계열뿐만 아니라 미 항공모함을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는 잉지(鷹擊·YJ)-21 극초음속 미사일 등 YJ 계열 미사일, 미국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JL)-3 등 JL 계열 미사일도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 뉴스 보는 시민. 연합뉴스전문가들은 이번 열병식 장면을 두고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미·중 신냉전 구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중·러를 중심으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신흥국들을 끌어모아 미국과 서방에 맞서는 반(反)서방 연대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이날은 양자외교에 집중해왔던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몸값을 끌어올리려는 계산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올해 또는 내년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한편,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 양자 정상회담을 위한 회담 장소가 마련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중국이 초청한 귀빈들이 머무는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 양국 국기가 게양됐다고 전했다. 김정은–푸틴 회담이 성사된다면, 2023년 9월 러시아 극동과 2024년 6월 평양에서 열린 회담에 이어 세 번째 정상회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