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구속영장 기각이나 무죄 판결이 늘어나는 게 친인권적 형사사법 시스템인가요?" 정부·여당이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설립에 합의하면서 형사사법 체계가 또 한 번의 대격변을 맞고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개편 방안을 두고 강렬한 찬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형사재판의 또 다른 축인 법관들의 의견은 검찰개혁 과정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CBS노컷뉴스는 일선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 10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해 최근 검찰개혁이 재판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이미 중대한 변화는 시작됐고, 검찰청 폐지와 '직접 보완수사권' 박탈 등 문제는 그 변화를 가속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만 변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특히 공판중심주의가 자리 잡아 가는 형사재판을 약 20년쯤 전으로 퇴보시키는 개악이 될 소지가 크다는 뼈아픈 비판도 나왔다.
"증거는 많은데, '유죄의 증거'가 없다"
▶ 지역 법원 형사단독, A 부장판사 |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했다면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었어요. 경찰에서도 조사를 많이 했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재판에서 내용을 살펴보니 고소인 진술만 듣고 '핵심기술'이라면서 수백개를 써놓았는데, 산업기술보호법상 해당하는 핵심기술인지에 대한 감정이나 인증이 전혀 없더군요. 수차례 석명(釋明·재판에서 판사가 사실이나 법률에 관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도 해봤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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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법원에서 형사단독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A 부장판사는 지난해 답답한 심정으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이같이 회고했다. 그는 "공소사실만 보면 검찰 단계에서 이미 걸러졌어야 할 사건"이라며 "기소를 할 것이라면 적극적인 보완수사를 통해 혐의가 구성됐어야 하고, 그정도에 미치지 못했다면 기소해선 안됐다"고 지적했다.
2018년도에 고소장이 접수된 해당 사건은 약 3년간 경찰에 머물다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로 넘어온 사건은 제대로 보완수사 없이 그대로 공소장에 담겨 법원으로 다시 떠넘겨졌다.
문재인 정부 당시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지만, '직접 보완수사권'과 '보완수사 요구권'은 남아있다. 그러나 사건에 빈틈이 보여도 일반적으로는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하기 보다는 경찰에 사건을 다시 보내는 보완수사 요구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검찰 내부 이야기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직접 보완수사와 보완수사 요구의 기준이 현행 법규정에 명확히 없다"며 "검사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사건 분량이나 내용, 수사기간 등에서 부담이 클수록 직접 보완수사를 하기보다는 보완수사 요구를 내리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완수사 요구로 사건이 다시 경찰로 넘어가도 '보완'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역시 사건 적체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미 한 번 결론내린 사건을 재수사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A 부장판사의 경우 심증으로도 유죄를 주기 애매한 사건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유죄가 의심되는데도 수사 미진으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경험도 있었다.
수도권 소재 법원의 형사합의부에서 근무하는 B 부장판사는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없으니 (경찰 수사) 기록상 추가 범죄 등이 있어보이는데 놓치고 그냥 기소되는 사건들을 여러 건 봤다"고 말했다.
B 부장판사는 "수사에 관한 통제가 없다 보니 경찰 입장에서도 어렵고 힘든 사건은 계속 들고 있다가 공소시효 한 달을 채 남기지 않고 기소의견으로 송치를 해버린 경우도 있었다"며 "검사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소시효를 일주일 남긴 상태에서 기소했다. 피해자가 고소한 지는 이미 7~8년 된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검사 대신 형사재판 주연 된 경찰, 판사는 '난감'
▶ 서울 소재 법원 형사합의부, C 부장판사 |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 차이가 느껴져요. 요즘 검사들이 일을 안하고 있다는 게…. 형사합의부 사건인데도 공소사실이 틀린 게 너무 많아요. 경찰이 잘못 쓴 부분을 검사가 공소제기를 하면서 수정도 하지 않고 부장도 검토를 안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판결을 10개 쓰면 7~8개는 내가 범죄 사실 관련 오류를 고치고 각주를 달고 있어요.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에 공소장 변경 없이 직권으로 수정한다'고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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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사실상 판사가 법정에서 마주하는 당사자는 검사가 아닌 '수사기록 속 경찰'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판사들은 어느 기관의 유능함-무능함 차이가 아니라, 법률 전문가 집단인 검찰이 담당하던 역할이 대체자 없이 축소된 데 따른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서울 소재 법원의 D 부장판사는 "수사-기소 분리는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수사통제가 안되는 건 다른 문제"라며 "검사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오는 사건의 경우 재판에서 물어볼 것들이 많아지는데, 판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적극적 지휘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결국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E 판사는 "검찰은 6500명 정예라면 경찰은 11만명쯤 되는 거대한 집단이라 편차도 클 것"이라며 "기존에 담당하지 않았던 부분을 맡게 돼 역량 등을 축적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제도 전환기의 문제는 영장청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B 부장판사는 "경찰이 현장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임의제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만약 검사가 중간에 있다면 '임의제출로는 불안하니 영장을 받자'고 할 수 있는데, 최근 그런 위법성 문제가 치명적으로 작용해서 나중에 다 무죄가 나와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검사들 때문에 증거법 법리가 발달했는데, 최근 2~3년 사이엔 경찰의 실수나 수사현장과 법률의 충돌에 의한 법리 발전이 많아졌다"고 꼬집기도 했다.
고등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F 부장판사는 "소위 '큰 사건'에선 경찰도 실수를 하지 않고, 아무리 제도가 불편해도 검찰도 어떻게든 살펴본다"며 "기자도 시민단체도 정치권도 모두 관심이 없는 일반 사건을 수사기관에서 쳐내는 과정에서 피해자도 피고인도 억울한 일들이 생긴다"고 짚었다.
"그냥 기록대로 해주세요"…공판중심주의 20년, 거꾸로 가나
▶ 수도권 소재 법원, G 판사 |
"사기 사건이었는데,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이 수사 자료에 없는 내용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어요. 돈을 빌리면서 제공한 담보가치가 충분했고, 피해자도 동의했다는 식이었죠. 공판검사는 기록에 없는 내용이 나오자 곧바로 대응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다만 여러 정황상 판사 입장에선 피고인에 대해 유죄 심증이 선 상태였기 때문에 미진한 부분을 다음 기일에 보완하길 기대하고, 그렇게 지휘도 했죠. 그런데 공판검사는 '수사검사가 청을 떠났다'거나 '수사기록만으로 판단해달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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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전후로 약 5년간 형사재판을 맡았던 G 판사는 '검사가 사건을 꿰고 있지 못할 때' 공판중심주의가 판사 홀로 외치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한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가 대폭 축소되고 수사지휘권도 폐지되면서, 수사 내용을 아는 검사의 공판 관여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검찰청 폐지 후 공소청에 보완수사권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경찰의 수사 내용을 기록물로만 본 공소청 검사들은 법정에서 피고인 혹은 증인들과 처음 대면하게 된다.
2006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서류만 모아오던 재판은 재판이 아니다'라고 파격 발언하며 법원에 정착시킨 공판중심주의가 약 20년 만에, 이번엔 '경찰 수사기록' 속으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G 판사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눈과 귀로 판사가 사건을 경험해야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법원에는 그러한 공판중심주의를 요구하면서, 검사에겐 기록만 보고 피상적으로 사건을 판단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특히나 그 기록의 작성자인 경찰은 공판의 당사자도 아니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 통제, 실효적 형사재판 가능케 해야"
▶ 지역 법원 형사단독, A 부장판사 |
십수년 전 형사합의부에 배석으로 근무했을 때 '완전 무죄'를 쓴 건 1년 중 두세 건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한 주에 한두 건은 보는 것 같아요. 보완수사를 하든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했다면 불기소 결정을 해야 하는데 책임지는 사람 없이 그냥 던지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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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을 지나 더불어민주당의 현재 방안대로 공소청이 신설되고 보완수사도 불가능해지면, A 부장판사는 "무죄율과 영장 기각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인권적인 형사사법 시스템이 되는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 등 일부 중요 인사들이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로 '억울한 피고인'이 됐다는 점이 검찰개혁의 주요 동력이 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지역 고등법원의 H 부장판사는 "영장을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하는 건 검찰을 심판하는 게 아니"라며 "만약 구조적으로 무죄율, 영장기각률이 올라가는 상황이 된다면 억울한 피고인이 수사단계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재판까지 왔다는 것, 혹은 진범을 처벌하는 데 실패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법원 형사합의부의 I 부장판사는 "법원에서는 경찰에 대해 영장이나 증거능력 판단, 무죄 선고 등으로 통제가 가능한데 이는 한계가 있다"며 "표적수사나 청탁수사 등 경찰 수사의 문제도 많은데 이런 부분을 통제할 기관과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법원의 형사합의부에서 일하는 J 부장판사는 "수사-기소 분리를 관철시키려면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주지 않는게 맞지만 '보완수사 지휘권' 형태로 반영한다면 위헌 시비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수사 통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G 판사는 "판사가 서류로만 보느냐 실제로 보느냐로 유무죄 결론이 휙휙 바뀌는 건 아니다. 수사권 조정과 검찰청 폐지 이후 실제 통계상으로 유·무죄율 등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아주 경미한 재판의 변화들이 쌓여 과거 공판중심주의 전 검찰이 형사법정을 지배했듯 경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