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김영미PD◆김영미>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쥬> 본명은 이주희이고, 작품 활동에서는 '이쥬'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일상에서는 본명으로 불리지만, 예술의 자리에서는 '이쥬 작가'로 불려지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김영미> 최근에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었죠.
◇이쥬> <위대한 유산_바비야르의 꽃>이라는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 전시는 제가 집필 중인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전쟁을 종식시킬 만한 힘'을 가진 유물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는데 그 세계관 속 서사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겁니다. 2024년 현대미술관에서 선정된 6명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했고, 이번 전시는 제 세계관을 관객들과 나누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김영미> 작품의 부제 '바비야르의 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이쥬> 바비야르는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학살터입니다. 저는 그 검은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한 상징을 넘어, 제 작업에서 늘 반복되는 주제인 '상처와 치유, 침묵과 회복'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상처 속에 치유를, 침묵 속에 회복을 준비하신다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 꽃은 제 예술과 신앙이 만나는 은유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김영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쥬> 2022년 전쟁 발발 소식을 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SNS에 반전 메시지를 올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그 무력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어도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것이 소설과 이번 전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김영미> 이번 작업에는 AI도 활용하셨다고요.
◇이쥬> 소설 속 세계관은 SF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금속이 꽃으로 변하거나 무기가 생태로 환원되는 장면은 기존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습니다.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가 구상하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새로운 도구라고 무조건 쓰는 건 아닙니다. 충분히 학습하고, 제 서사에 꼭 필요한 순간에만 활용합니다. AI는 제 이야기를 보완하는 도구이지, 목적 자체는 아닙니다.

◆김영미> 사진, 미디어아트, AI 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유는 어떻게 됩니까.
◇이쥬> 학부에서는 사진영상을, 대학원에서는 미디어아트를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연극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고, 영화 작업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이건 이쥬 작가의 작품이구나'라는 일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서사와 메시지에 충실하다면 장르는 저를 가두지 않고 오히려 확장시켜 줍니다
◆김영미> 제주 이주는 작품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이쥬> 저는 원래 서울 북촌 토박이입니다. 2016년 부모님 간병 때문에 어머니 고향인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님은 결국 제주에서 생을 마감하셨는데 그 경험은 저에게 깊은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삶과 작품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내면적 작업에 집중했다면 제주에 온 이후에는 역사와 사회, 다음 세대에 남길 가치 같은 외부적 주제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제주4·3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와 다음 세대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극, 다큐멘터리,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미를 전하려 합니다
◆김영미> 이쥬 작가 작품의 키워드인 '상처와 치유, 침묵과 회복'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쥬> 이 표현은 사실 제 작품을 분석해 주신 분들이 붙여주신 언어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제 작업 속에서 침묵은 끝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며 회복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치유는 고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품으며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과정입니다. 전시는 바로 그 여정을 관객과 함께 걷자는 제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작품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몸시_제주4.3의 기억과 아픔을 서사적 재현과 시적 은유로 표현한 작품. 이쥬 작가 제공◆김영미> 신앙과 예술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이쥬> 유년 시절 안동교회 성경학교에서 신앙을 시작했지만 대학 시절 이후 지식과 사조에 빠져 오랫동안 냉담자로 지냈습니다. '왜 전쟁은 계속되는가, 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가' 같은 질문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제 좁은 시선을 넘어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C.S. 루이스가 무신론에서 신앙으로 돌아온 과정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저에게 엄격한 심판자가 아니라 인내와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김영미> 작품 활동 중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순간이 있었나요.
◇이쥬> 예술가라는 직업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열망만으로는 버티기 어렵고, 세상의 욕망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며 작업할 때 영감을 선물처럼 주시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나 자료를 연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늘 사람을 통해 채워주시고, 때로는 불빛처럼 길을 보여주십니다
◆김영미> 개인적인 신앙 고백을 나누어 주시죠.
◇이쥬> 저는 신앙심 깊은 성도가 아닙니다. 진리를 찾겠다고, 때로는 말씀이 족쇄 같아 불편하다며 광야에서 방황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하나님은 같은 자리에 계셨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내밀어 주시고, 어깨를 내어 주시며 결국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김영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이쥬> 소설 세계관을 확장해 <아포리아의 증언>이라는 설치 미디어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모순과 대립을 담은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폭력과 희망을 증언하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올해 12월 레지던시 결과전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또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도 3~4년 계획으로 진행 중입니다. 언젠가는 제 작품이 작은 씨앗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서 희망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김영미>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이쥬> 예레미야 29장 13절 말씀을 붙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저의 삶과 작품이 하나님을 찾는 여정 속에 있기를,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