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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록지 않은 삶 향한 황슬기 감독만의 응원 방식 '홍이'[최영주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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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이'(감독 황슬기)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서늘한 시선에 마음이 따끔거린다. 무엇하나 해소된 것 없는 엔딩에 덩달아 현실로 끌어내려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누군가를 밑바닥에 세우려는 게 아니라, 그마저도 함께하겠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온 마음으로 냉혹한 현실에 선 누군가가 다시 일어서길 응원하는 마음이다. 솔직하지 못한 딸과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홍이'는 그렇게 더 마음을 흔든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 홍이(장선)는 어느 날 요양원에 있는 엄마 서희(변중희)에게 목돈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의 통장이 간절했던 홍이는 돈을 핑계로 엄마를 데려온다.
 
그렇게 동거가 시작됐지만, 만만치 않은 성질머리의 서희와 함께 살아야 하는 홍이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매일 어긋나던 모녀는 서서히 서로의 벽을 허물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 속에서 또 다른 마음을 발견한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단편 영화 '자유로'와 '좋은 날'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윤가은 감독의 단편 '콩나물'과 데뷔작 '우리들' 조연출, '우리집' 스크립터를 거친 황슬기 감독의 데뷔작 '홍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 속에 감독만의 다정함과 세심함이 깃든 작품이다.
 
보통 한 인물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는 배경을 파악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라는 결과가 있을 거라는 전제에서 우리는 과거라 불리는 사연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홍이'는 그런 보통의 법칙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 눈앞에 있는 인물을 바라보게 한다.
 
돈이 필요해 치매 엄마를 요양원에서 나오게 해 함께 사는 홍이는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많아 보이는 인물이다. 빚에 시달리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거짓으로 이어져 있고, 누군가와의 관계마저 원활하게 이어가질 못한다.
 
선택 앞에 머뭇거리고, 때로는 도피하려는 모습조차 보인다. 미래에 대한 대책이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홍이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그런 모습을 가져봤고, 그런 과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그런 홍이와 엄마 서희의 관계 역시 아슬아슬하다. 홍이만큼이나 엄마 서희도 솔직하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딸을 향해 "OO하면 복 나가"라고 하거나 툭툭 말을 던지지만, 그건 걱정의 한 자락이다. 서희는 사실 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해 주는 그만의 배려를 지닌 인물이다.
 
홍이와 서희, 홍이가 관계 맺는 다른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아슬아슬 위태로운 것은 솔직함의 부재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홍이에게 너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꺼내놓아야 한다고, 솔직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그래야만 홍이의 미래가 찬란할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가 부재를 깨닫고 채워 넣으려 하거나 혹은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안겨주려 하지만, '홍이'가 홍이에게 준 결말은 지독히 외롭고 냉혹한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는 홍이의 말과 선택을 이해할 만한 전사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지금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어느 것도 알 수가 없다.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건 매 순간의 홍이, 선택 앞에 놓인 홍이의 모습일 뿐이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홍이'는 전사라는 과거를 담는 대신 감독은 현실을 마주하길 선택했다. 이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홍이를 바라보고, 알 수 없는 행동조차도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고 질문하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다.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보는 사이 어느새 홍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엔딩까지 이어진다.
 
보통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해피엔딩도 없고, 현실을 감추거나 인물을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감독은 어설프게 현실을 미화하거나 포장하거나 억지로 해피엔딩으로 주인공을 이끌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홍이나 서희의 감정을 특별하게 극화하거나 영화적으로 연출하지도 않는다. 그저 홍이가 놓인 현실, 그가 선택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이 '홍이'가 가진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영화의 힘이 되는 건, 이러한 냉정한 현실을 가감 없이 바라보게끔 하는 것 역시 냉혹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자 배려이기 때문이다.
 
냉정함이 어떻게 배려가 될 수 있나 싶지만,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상처를 똑바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프다고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며 부디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하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황슬기 감독이 영화와 현실의 모든 홍이에게 바치는 마음이자 응원인 것이다.
 
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스틸컷. 에무필름즈 제공
'홍이'는 배우 장선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발견이자 그를 아는 배우에게는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연기 잘하는 배우, 독립영화계의 대표 배우로 잘 알려진 장선은 홍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뛰어난 배우인지 보여준다.
 
보이지 않았던 과거를 품고 현실을 살아가는 홍이는 표면적으로는 관객이 쉽게 마음으로 품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가 한 번쯤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 안에 존재하는 인물에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고, 관객과의 연결을 잇는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장선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더 뛰어나게 홍이가 되어 관객들을 마주한다.
 
여기에 엄마 서희를 연기한 변중희 역시 뛰어난 열연으로 관객들의 눈을 붙든다. 딸에게조차 내비치지 못하는 마음을 말과 다른 눈빛 속에 담아 찰나에 전달하는 그 연기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맴돈다.
 
세상은, 삶은 녹록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영화로 그려내면서 영화적이기보다 냉정하게 바라보며 그려낸 건 황슬기 감독의 다정함이 있기에 가능한 지점이다. 어설프게 꾸며낸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직면할 수 있는, 말랑한 다정함이 아니라 냉정할지라도 단단한 다정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황슬기 감독이 보여줄 다음 현실과 다정함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86분 상영, 9월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홍이' 포스터. 에무필름즈 제공영화 '홍이' 포스터. 에무필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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