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20여 명의 학부모가 하교하는 자녀를 기다리고 있다. 송선교 기자19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20여 명의 학부모들이 하교하는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문 밖으로 나오거나 각자 두리번거리며 부모님을 찾았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엄마"라고 부르는 등, 반가운 모습으로 부모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주로 저학년이 하교하는 시간대인 이 시간에는 대부분 학생이 부모님을 만나거나 학원 차를 타고 하교했다.
경찰관 2명도 하굣길에 나와 아이들을 지켜보며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이 차도로 걷지 않도록 안내하고, 혼자 다니는 아이에게는 어디를 향하는지 물어보며 "조심하라"고 친절이 깃든 당부를 했다. 아동안전지킴이 활동을 나온 어르신 2명도 정문 앞에서 아이들을 살폈다.
비가 내린 이날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백이영(39)씨는 한 손에 아이의 우산을 챙겨 나왔다. 혹시라도 아이가 나올까 봐 학교 안쪽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던 백씨는 "등하교 때마다 (아이와) 함께 다니고 있다"면서도 "유괴 사건 관련해서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최근 초등학생을 약취·유인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약취·유인 범죄 건수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범행 동기는 정확히 집계된 것이 없다. 선제적인 예방·순찰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 데이터 분석과 연구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광명 등 사건 잇따라…학부모 "마음 안 놓여"
연합뉴스백씨를 만난 이곳 인근에서는 최근 성인 남성들이 하교하는 초등학생을 유괴하려 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 30분쯤 20대 남성 3명이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차량으로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귀엽다", "집에 데려다줄게" 등 말을 걸며 유인했다. 하지만 피해 학생이 현장을 벗어나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이들은 두 차례 더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경찰은 남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돼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박모(39)씨는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기니 더 불안했다"며 "유인됐던 아이들과 (자녀가) 비슷한 또래라서 더 마음이 불안한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어 "모르는 사람을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며 "특히 좋은 말을 하며 장소를 옮기자고 할 때 (따라가면) 절대 안 되고, 부모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백씨도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며 "딸이 지금은 어려서 항상 동행하고 있지만, (미래에) 혼자 다닐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했다.
서대문구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귀가하던 초등학생 여아를 따라 올라간 뒤 끌고 가려 한 10대 남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학생은 "성범죄를 저지르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9일에는 제주 서귀포에서 30대 남성이 초등학생 여아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겠냐"는 취지로 말하며 차에 태우려다가 실패했다. 지난 10일 대구에서는 60대 남성이 "짜장면을 먹자"며 초등학생 여아의 팔을 잡아끄는 사건도 있었다.
미성년자를 약취·유인하려는 범죄가 잇따르자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 1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2일부터 미성년자 약취·유인 방지를 위해 경찰 활동 강화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등하굣길과 심야 시간대 학원가 주변 등을 대상으로 예방 순찰을 강화했다. 어린이 주변을 배회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는 등 거동이 수상한 자에게는 적극적으로 불시 검문을 하고,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건을 '코드1(긴급출동)' 이상으로 접수해 최우선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최근 몇 주간 약취·유인을 시도하려는 사건이 많아지는 이유에 대해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서대문 사건이 촉매제·활성화 역할을 했다"며 "소아기호증 범죄자 등 왜곡된 욕구가 있던 사람들의 (범행) 잠재성이 활성화되며 짧은 시간 안에 전국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또 "평상시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최근 사건들로 인해) 더 민감하게 느껴져서 신고 자체도 늘어난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범행 동기 알아야 적합한 정책·대안 나오는 것"
약취·유인 관련 범죄가 늘어난 것은 최근 몇 주 동안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약취·유인 범죄 발생 건수는 △2020년 158건 △2021년 193건 △2022년 222건 △2023년 260건 △2024년 236건이다. 지난해에 조금 꺾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증가세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 이미 173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라도 만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약취·유인 사건은 △2020년 113건 △2021년 138건 △2022년 178건 △2023년 204건으로 3년 사이 약 80% 증가했다.
문제는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관련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 데이터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범행 사건 수만 집계되고 있을 뿐, 그 배경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범행 동기를 알아야 그에 적합한 정책과 대안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며 "국가와 정부가 범죄 문제를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지 않다 보니까 범죄에 대한 세세한 진단과 통계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임준태 교수는 "현재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면서도 "금품을 노리고 부유한 아이들을 유괴하고 납치하는 사건이 예전에는 많았고, 해외에서는 신체 장기를 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범행의 목적이 성범죄와 관련됐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는 "10년 전에 판결문을 뽑아서 (직접) 분석을 해본 적이 있는데, 성범죄 목적이 한 65~70%가량 있었다"며 "왜곡된 성적 욕구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 증가세의 이유를 분석했다.
특히 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접근도 쉽고 완전하게 제압하고 통제하기도 수월하다"며 "바꿔 얘기하면 (범죄자들이) 군림하기 쉬운 대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방 활동과 순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교수는 "범죄 예방은 경찰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초등학교 등 시설에서 교육도 필요하다"며 "학부형들을 1년에 한두 번 학교로 초청해서 집중적인 예방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경찰 대응 강화와 관련해 임 교수는 "경찰을 추가로 배치해 순찰하는 등 대책을 세우기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초·중·고에 파견된 학교담당경찰관(SPO)과 학교 보안관 선생님 등이 현장에서 예방 교육과 순찰을 잘하도록 근무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도 "경찰·교육청·학부모 등 지역사회의 협력을 통한 치안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