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종민 기자정부가 지난해초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존치'를 결정하며 내건 '지역인재 20% 선발 의무화'가 일부 학교에서 최소한의 기준치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 서열화' 조장 비판을 받아온 자사고를 2025학년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유지하기로 한 대신, 전국 단위 자사고가 소재지 학생을 최소 20% 이상 뽑게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시행 첫 해 뚜껑을 열어본 결과, '1세대 자사고'의 상징인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에 해당 전형으로 합격한 신입생은 10%대에 불과했다.
지역 학생 더 뽑겠다더니…'서울' 하나고만 99%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교육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단위 자사고인 민사고(강원 횡성)의 2025학년도 지역인재 선발 비율은 13.75%(총 선발인원 160명 중 22명)에 그쳤다.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 박사가 세운
전북 상산고등학교 역시 신입생 정원 334명 중 65명만이 지역인재 몫에 해당해, 20% 미만(19.46%)을 기록했다.
두 학교는 지원자 수가 선발 정원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민사고는 원래 지역인재전형이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변화 폭이 다소 미미하다는 평가다.
정부가 제시한
지역인재 할당량을 웃돈 자사고는 대개 수도권 또는 인접지역 소재였다. 무려 99.03%(206명 중 204명)를 기록한 하나고(서울 은평구)와 △인천하늘고 68.89%(225명 중 155명) △충남 북일고 36.10%(374명 중 135명) △경기 용인외대부고 30.0%(350명 중 105명) 등이 그 예다.
비수도권 중에서는 울산 현대청운고(48.33%, 180명 중 87명)가 그나마 절반 가량을 지역인재로 뽑았다. 포스코가 각각 건립한 전남 광양제철고(21.15%, 227명 중 48명)와 경북 포항제철고(20.0%, 300명 중 60명)의 경우, 20% 선을 턱걸이로 겨우 넘겼다.
자사고 신입생, 여전히 '강남3구' 출신이 대세
2019년 7월 서울시교육단체협의회와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엄정 평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서울을 위시한 '수도권 강세'는 전국·광역 단위를 아우른 자사고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이들 학교 입학생의 과반은 서울 출신으로, 인천·경기까지 합치면 전체 7할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2025학년도 자사고 입학생 1만 300명 중 서울 중학교를 나온 학생이 56.3%(5801명)였고, 경기와 인천이 각각 10.0%(1030명), 4.6%(473명)였다.
때문에, 광역단위 자사고가 서울에 가장 많은 점 등을 감안해도 종전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4년도에도 서울·인천·경기 출신이 71%에 달했던 탓이다.
특히 '강남3구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2025학년도 기준 서울·전국단위 자사고 신입생 중 서울 출신을 구(區)별로 나눠보면, 강남3구 비율이 40.5%(5687명 중 2301명)에 이른다(※자료가 미제출된 용인외대부고를 제외한 수치).
강남구(15.2%)와 서초구(14.9%), 송파구(10.4%) 외 두 자릿수를 기록한 서울 자치구는 전무했다. 결국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완화하겠다던 당국의 의도와 달리,
한국이 왜 '서울공화국'인지만 증명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예고편 될라"
교육부가 이번 성적표를 계기로 정책목표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지방 우수학생들에게 자사고 입학 기회를 늘려 주는 것보다는,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학업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초공교육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정훈 의원은 "이번 자사고 지역인재 선발에서 드러난 수도권-비수도권 교육 격차는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실패 예고편이나 다름없다"며
"지역의 유·초·중등 공교육 바로 세우기를 전제하지 않은 채, 고등교육기관 투자만으로 현 입시구조를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는 '자사고 존치냐, 폐지냐'의 소모적 논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지방 학생들이 실제로 경쟁력을 키우고 도전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과 기회 격차를 해소하는 실질적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민사고 등의 지역인재 선발 기준치 미충족과 관련, 후속조치 여부를 묻는 CBS노컷뉴스의 질의에 "지원자 미달로 인한 부분까지 제재를 가하긴 힘들다"고 답했다. 일단 의무화된 전형 자체는 공고·실시했기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작년 1월 해당 시행령 적용을 발표할 때, 일부 '정원 미달' 우려를 두고 '아무리 학생이 없어도 뽑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한 입장과는 모순된다는 비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