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16일 내려지면서 SK그룹 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금 약 1조40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유동성 확보 부담이 커질 수 있어 SK그룹의 지배구조에까지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산분할금 665억-1.4조 '20배 차이'…'노태우 비자금' 등 쟁점
16일 재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오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을 연다. 앞서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으로 하여금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 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위자료와 재산 분할금을 각각 1억원과 665억원으로 판단했는데, 20배가 늘어난 것이다.
주요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할지 여부다. 특유재산이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신이 취득한 재산으로, 원칙적으로는 분할 대상이 아니지만 상대가 재산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나눌 수가 있다.
1심에서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을 고 최종현 SK선대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특유재산으로 봤다. 이에 따라 주식을 재산 분할의 대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반면 항소심에서는 최 회장이 SK㈜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 노 관장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흘러 들어가, 부부의 공동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재산 분할금이 껑충 뛰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판단도 결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유입됐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수용했다. 노 관장 측은 '선경 300억'이라고 쓰인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와 SK가 발행한 50억원의 약속어음 사진을 제출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이 이번에 처음 재판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비자금 존재는 확인된 바 없으며 SK 성장과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김 여사의 메모와 SK의 약속어음 사진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을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이 '치명적 오류'라고 주장하는 항소심 재판부의 주식가액 계산 실수도 중요 쟁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SK 주식의 모태인 대한텔레콤 주식가액을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잘못 인지했는데, 최 회장 측은 이로 인해 재산분할액 산정이 100배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이후 재판부가 판결문을 경정했지만 대법원은 이 경정이 적합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판결에 따라 SK그룹 지배구조 영향…원심 확정 시 '발등에 불'
연합뉴스판결 결과에 따라 SK그룹의 지배구조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어 재심리를 요구하는 파기 환송을 결정할 경우, 재산 분할 규모는 작아질 가능성이 높다. 쟁점 하나라도 뒤집힐 경우 재산 분할금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그룹 입장에서는 한숨 돌리게 된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보고서에서 "대법원의 파기 환송 시 재산 분할금 감소와 경영권 안정화로 SK㈜의 주가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원심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다. 최 회장은 현금 1조3808억원에 달하는 재산 분할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재산은 대부분 SK그룹의 주식으로, 이중 지배구조의 핵심인 지주회사 SK㈜ 지분 17.90%가 가장 많다. 그러나 특수관계인을 포함해도 최 회장 측 지분은 25%대로 높지 않다. 최 회장이 해당 주식을 처분할 경우 그룹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어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행동주의 캠페인의 위협에 취약해진다.
최 회장이 주식을 일부 매각할 경우 SK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지분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금은 부담 요인이다. 현행법상 대주주가 3억원 이상 주식 양도 차익을 얻을 경우 27.5%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충분한 현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최 회장 측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배당 정책을 대폭 강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 회장이 29.4% 보유 중인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마저도 현재로서는 녹록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는 지분 가치를 약 2조원으로 추산 중인데, 최 회장의 지분을 뺀 나머지 70.6% 지분에 대한 매각가를 놓고도 SK 측과 시장 간의 견해차가 커 매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을 진두지휘하고 그룹이 AI와 배터리 등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불거지면 타격이 클 것"이라며 "하루빨리 불확실성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