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여한구 통성교섭본부장이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한미 관세협상 막판 총력전에 나서면서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타결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다만 시한을 못박지 않고 '국익 최우선' 원칙을 내세운 만큼, 남은 쟁점 조율과 협상 동력 유지가 관건이다.
김용범 "실질적 진전"…정부 총력전 성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에서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마치고 19일 귀국해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이번 방미 전보다 APEC 계기 타결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정부 경제·통상 사령탑들은 지난 16일 전후로 잇따라 미국을 찾아 각료급 협상을 이어갔다. 김 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각각 만났다. 여한구 통상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접촉하며 협상 채널을 다변화했다.
핵심 쟁점은 3500억 달러(약 49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자금 운용 방식이다. 미국은 전액 현금 선불 투자를 요구하지만, 한국은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투자 비중을 낮추고 보증·대출을 병행하자는 입장이다. 외환시장 충격 완화 차원에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미국이 대한민국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감내 가능한 범위에서 상호호혜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의견이 근접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현금 투자 비중을 일부 확대하되, 투자 기간을 중장기로 늘리는 등 절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PEC 외교 무대서 타결 가능성 가시화
연합뉴스
다만 최종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 구윤철 부총리는 16일 미국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 실무 장관들은 (한국 상황을) 이해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용 여부에는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번 협상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희토류 통제 문제로 대립 중인 미국이 주요 동맹국과의 공조 복원을 과시할 수 있는 외교 무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APEC 시기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추진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과 맞물린 외교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으며 내실 있는 방한이 될 수 있도록 일정과 예우를 세심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우 차원에서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 수여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외 불확실성 속 '방산 수출' 전략 병행
협상 타결 기대감이 높아지는 한편,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협상 장기화나 통상 환경 급변에 따라 성장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관세 쇼크' 여파로 한국의 대미 수출은 두 달 연속 감소세고, 최근 중국까지 견제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제재하며,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 지렛대로 추진 중인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전략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수출 다변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날 유럽 출장길에 오르며 "방산 4대 강국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강 실장이 방문 예정인 국가들과 추진하는 방산제품 도입 규모는 총 562억 달러(약 7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