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는 미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 원자력 잠수함(SSN) 아나폴리스함. 해군 제공정부가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보유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낸 것과 관련해 모처럼 지역과 이념성향 등을 넘어선 여론 결집이 이뤄지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 엔비디아와의 AI동맹 같은 대형 호재와 맞물려 범국민적 사기 진작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이는 국민 10명 중 9명이 원잠 보유를 찬성하는 압도적 여론으로 확인된다. 여론조사 '꽃'에 따르면 미국으로부터 원잠 건조 승인을 받아낸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87.2%,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9.4%였다.
이는 지역과 이념, 연령을 초월했다. 호남(96.9%)은 물론 대구·경북(77.8%)도 80% 가까운 지지를 보냈고 정당 지지층 별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96.4%, 국민의힘 지지층의 74.0%, 무당층의 76.9%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념 성향별로도 진보층(95.9%)과 중도층(91.2%), 보수층(75.4%) 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 여론조사는 10월 31일~11월1일 전국 남녀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이 정도의 국민 총의가 모아진 정치·외교적 사안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6·15 공동선언도 당시 긍정 평가는 70%대로 원잠에 대한 전폭적 지지에는 한참 못 미쳤다.
한 안보 전문가는 "원잠은 보수·진보 상관없이 약 30년에 걸친 오랜 숙원사업이고, 사실 보수 진영이 더욱 환영해야 할 일"이라며 "원잠 보유는 국가 위상과 국민들의 자신감을 드높이는 일대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런 여론 지형을 반영한 듯, 12·3 내란 척결의 여파로 이재명 정부에 잔뜩 날을 세운 국민의힘 쪽에서도 호의적 평가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달 30일 한미 관세협상 결과를 "선방한 것"으로 평가하며 "특히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은 우리 안보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유용원 의원도 지난달 30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개인 소견을 전제로, 이 대통령의 핵추진잠수함에 대한 요청과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 승인 또는 허용은 아주 잘했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물론 성일종 의원처럼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나 대한민국의 핵잠수함을 전략적으로 승인할 가능성이 높았고 타이밍을 본 것"이라며 평가절하 하는 반응도 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원잠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매우 큰 전후방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원잠은 조선과 원자력, 소재·부품, IT·전자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래식 잠수함 분야에선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원잠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선체 규모가 훨씬 커지고 안전과 내구성도 더욱 강화돼야 하기 때문에 조선 기술이 한층 발전할 기회가 되며, 소형모듈식원자로(SMR)를 잠수함에 장착하는 과정에서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 기술도 더욱 진화하게 된다.
잠수함 건조 지역을 놓고 최종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상당할 전망이다. 원잠 건조는, 한국 조선업의 도움으로 미국 조선을 재건하는 '마스가'(MASGA)와 더불어 K-조선 역량을 세계에 과시할 기회도 된다.
이는 폴란드와 캐나다 등의 잠수함 수주전에도 크게 기여하며 K-방산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는 또한 제2의 조선 붐을 일으키며 산업단지·인프라 확충, 대학 조선학과 등 인력 양성의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원잠은 국내 침체된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안보, 산업, 고용 측면까지 전방위 파급 효과를 낳는 거대한 종합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