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선거는 결국 바람의 싸움이다. 바람을 일으키는 자가 판을 주도하고, 바람을 읽는 자가 승리를 거머쥔다. 때로는 운 좋게 그 바람을 잘 타는 것만으로도 승부가 갈린다. 최근 뉴욕 시장에 오른 조란 맘다니의 승리가 그랬다.
뉴욕 역사상 100년 만에 가장 젊은 시장이 된 맘다니는 MZ세대인 1991년생이다. 국민가수 임영웅과 동갑이다. 우간다 출신 인도계 이민자로, 시민권을 취득한 지 불과 7년 만에 뉴욕 정계의 터줏대감인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를 꺾었다는 점도 놀랍다. 어떻게 이런 돌풍이 가능했을까. 이 바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각에선 반트럼프 정서에 대한 반사이익이라고 한다. 그게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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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맘다니 바람의 진원지로 대도시의 '외로운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를 지목했다. '뉴욕'과 '외로움'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들린다. 그러나 화려한 도시의 불빛 뒤에서 뉴욕의 젊은 세대는 깊은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팬데믹은 인간관계를 단절시켰고, 높은 생활비는 자립의 꿈을 멀게 했다. 하루 평균 여섯 시간 이상 스마트폰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사람을 직접 만날 여유는 없었다. 소속감은 약해지고, 술자리나 연애 같은 전통적 관계의 방식도 줄어들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도시 뉴욕에서 젊은 세대는 '연결' 대신 '단절'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젊은 뉴요커들에게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은 '정치'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었다. 그는 유세장을 토론장이 아닌 공동체의 놀이터로 바꾸었다. 젊은 지지자들은 함께 티셔츠를 만들고, 농구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며, 거리의 바에서 만나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들은 문 앞을 두드리며 유권자에게 말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덜어냈다. 이들에게 캠페인 참여는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치유'였다고 뉴욕타임즈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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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다니 또한 거창한 이념 대신 삶의 온도를 높이는 정치를 내세웠다. "칵테일 한 잔에 18달러, 1달러로는 이제 피자 한 조각도 살 수 없다"는 청년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였다. 공약은 다소 과감했다. 임대료 동결과 태만한 임대인에 대한 규제 강화, 생활비 부담 완화를 위한 시 소유 식료품점 체인 운영, 5세 미만 아동을 위한 무상 보육 등을 약속했다. 반면 고소득자 대상 '부유세' 신설을 주장했다.
이런 공약으로 '좌파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고, 트럼프는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낙인찍었다. 그러나 청년층은 '함께 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그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했다. 맘다니가 청년의 외로움을 연대로 번역한 순간, 무관심은 참여로, 참여는 표로, 표는 결국 '바람'이 되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78%가 맘다니를 지지했고, 쿠오모 전 주지사는 18%, 공화당 후보 커티스 슬리와는 4%를 얻는 데 그쳤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맘다니'를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서울 탈환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맘다니 돌풍'이 서울에서도 재현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수치는 여권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맘다니 돌풍을 꿈꾸기엔 더불어민주당의 청년층 지지율이 여전히 취약하다. 각종 조사에서 20대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보다 두 자릿수 이상 뒤처져 있다.
물론 불법 계엄 이후, 청년들은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응원봉이 그대로 여당을 향해 계속 빛날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된다. 서울 청년들도 뉴요커들 못지않게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청년들은 "서울에선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고 말한다. 빛나야 할 이들의 청춘은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와 고시원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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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당이 집중하고 있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등 왜곡된 권력 구조를 바로잡는 일만큼이나,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주거비·취업난·낮은 임금·박탈된 기회의 문제를 다루는 일도 결코 가볍지 않다.
맘다니 돌풍을 반트럼프 정서로만 해석한다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서울의 맘다니는 꿈꾸지 말아야 한다. 광장에서 드러났듯, 청년들은 정치에 등을 돌린 게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삶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치인에게 마음을 닫았을 뿐이다.
그들은 불법 계엄과 같은 비상식적 정치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숨 쉴 여유와 미래를 꿈꿀 권리를 원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붙들고 함께 연대할 '동행자'다.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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