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왼쪽)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황진환 기자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의혹의 정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해병특검 출범 이후 142일 만이다.
특검은 21일 윤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용서류무효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외압에 가담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11명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기소 대상자에는 국방부 신범철 전 차관, 전하규 전 대변인, 허태근 전 정책실장,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검찰단장,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유균혜 전 기획관리관, 조직총괄담당관 이모씨 등이 포함됐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19일 채수근 상병 순직 이후 해당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변경하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박정훈 대령이 이끈 해병대 수사단은 채상병 순직 당일부터 열흘간 80여명을 조사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자로 판단했다.
해병특검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이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격노해 사단장까지 처벌하는 것에 강한 질책을 했고, 이때부터 대통령실과 국방부 고위직들의 조직적 직권남용 범행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채해병 과실치사 혐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가운데). 박종민 기자
특검 수사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이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혐의를 보고했을 때 이 전 장관도 이견 없이 결재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해당 수사결과를 인지하고 '격노' 반응을 보이자, 이 전 장관은 긴급현안회의를 열어 수사결과를 변경하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이 김계환 전 사령관에게 연락해 수사 결과를 바꾸려 압박했다는 게 특검 수사 결과다. 앞서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른바 'VIP 격노 내용'을 전달하며 압력을 행사하기고 했다.
그러나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윗선 지시에 따르지 않고 사건 기록을 경찰에 보내자 윤 전 대통령은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사건 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해오도록 지시했다. 신범철 전 차관에게는 박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과 항명죄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구체적인 직권남용 범죄가 벌어졌다는 게 특검 판단이다.
이후 채상병 사건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됐다. 조사본부도 재조사 결과 임 전 사단장에게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냈지만, 특검은 박 전 보좌관이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수사결과를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특검보는 "피고인들은 조직적으로 실행행위를 분담해 직권남용을 저질렀고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황진환 기자특히 특검은 수사 외압 과정에서 박 대령에게 가해진 일련의 보복 조치들도 확인하고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게 두 차례 체포영장을,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감금,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특검은 군검찰이 공소권한을 남용해 박 대령을 항명죄와 상관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으로 보고 박 대령의 신분회복을 위해 항소를 취하한 바 있다.
정 특검보는 "독립적으로 이뤄져 할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했던 수사단에게 국방부가 조직적인 보복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권력형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며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이 왜 '격노'하며 임 전 사령관 제외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배경으로 거론된 이른바 '구명로비 의혹' 관련 내용은 이번 공소사실에 담기지 않았다.
정 특검보는 "대통령이 사건에 개입한 것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임성근 구하기 때문인지는 수사를 해오고 있지만 공소장에 그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특검 출범 초기부터 다른 목적이었더라도 대통령이 개별 수사에 개입한 것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특검은 구명로비 의혹 관련 조사는 다음 주 특검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특검은 이시원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등에 대해서는 범죄규명에 조력한 사정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