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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 12·3 계엄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배우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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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겨우 몇 시간 평화적으로 진행된 계엄을 내란이라고 볼 수 없다." '내란 수괴' 혐의 피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기 변론적 궤변이다. 12·3 내란의 상흔은 사회 곳곳에 선명하다. 40여 년 전 광주의 트라우마를 다시 끌어냈고, 군·경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는 민주주의와 국가 시스템 전반을 위협한 '실제적 내란'이었다. CBS노컷뉴스는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그날의 상처를 다시 추적한다. 내란의 후폭풍은 끝나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을 '평화'라는 말로 가릴 수 없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12·3내란 1년]'평화적 계엄' 망언 뒤 상흔들③
계엄 때 사직서 낸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국민 일상 완전히 망가뜨린 계엄"
헌법학자 박상철 교수 "실행에 옮긴 순간 이미 내란…헌정질서 작동 멈춰"
'민주주의 연구' 신진욱 교수 "맨손의 시민들이 막았다는 점에서 큰 사건"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성경 크리에이터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성경 크리에이터
헛소리, 궤변, 망언, 거짓말. 12·3 비상계엄이 '평화적'이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장에 CBS노컷뉴스가 앞서 만난 5·18 생존자들과 시민들, 군·경 등은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계엄은 45년 전 시민을 공격한 총과 곤봉, 군홧발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냈고, 군·경을 가담자로 만들어 패닉에 빠뜨렸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를 부정하기 위해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느니 지시받았느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1년 전 내란 사태를 되짚으며 마지막으로 계엄 당시 사직서를 낸 유일한 공직자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과 헌법과 민주주의 전문가인 정치·사회 학자 2인에게 물었다. 이들은 "12·3은 수십 년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와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린 분명한 내란"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류영주 기자·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전 대통령. 류영주 기자·사진공동취재단

'00시 09분' 회의장 나와 사표…1년 전 그날의 선택

"12·3 계엄은 어느 개인의 비상식적이고 정신 착란에 가까운 현실 인식, 또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어떻게든 타결시키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공직 상의 권한을 남용해서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왜곡시킨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하는 류혁(57·사법연수원 26기) 전 법무부 감찰관의 표정은 단호했다. 내란 사태 1주기를 딱 일주일 앞둔 지난달 26일 오전 CBS 목동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지난해 비상계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라고 묻자 이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1년 전 그날 박성재 법무부장관 면전에서 '계엄 관련 지시나 명령을 이행할 생각 없다'며 사표를 던진 그의 표정은 이보다 얼마나 더 단호했을까.

지난해 12월 3일 밤 류 전 감찰관은 처음 아들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전해 듣고 '가짜뉴스'라 생각했다. TV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들으며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등을 '반국가세력'이라 칭하며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비상시에만 발동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는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야 간에 의견 대립이 있다고 왜 계엄을 합니까. 발표하는 태도도 매우 일방적이고 억압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공무원이지만 이건 안 되겠다, 이 계엄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그런 지시나 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방법은 사직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법무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회의가 소집됐다. 류 전 감찰관은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박성재 장관을 향해 "이게 계엄 관련 회의인가"라고 물었고, 박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류 전 감찰관이 "저는 계엄 관련 지시나 명령을 전혀 이행할 생각이 없다. 그만두겠다"고 하자 박 장관은 오히려 "그렇게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류 전 감찰관은 곧바로 회의장을 나와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썼다. 사직서에는 '00시 09분', 정확한 시각을 적었다. 그는 "'이 시간부터는 나는 당신들과는 상관없다, 완전히 절연'이라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낸 실제 사직서. 류혁 전 감찰관 제공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낸 실제 사직서. 류혁 전 감찰관 제공

"민주주의 파괴 행위…80년대 이전으로 퇴행시켜"

류 전 감찰관이 사직서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에선 12월 4일 새벽 1시 1분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같은 날 새벽 4시 26분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 4시 30분 국무회의 의결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됐고, 현재까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평화적 계엄', '경고성 계엄'이란 주장에 대해 류 전 감찰관은 "음주 습관이 잘못된 사람이라든지 일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행동이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한다고 하더라"며 "자기 행동이 얼마나 남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줄 수 있는지 판단을 할 수 없으니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12·3 비상계엄 당시 사직서를 낸 유일한 공직자인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남성경 크리에이터12·3 비상계엄 당시 사직서를 낸 유일한 공직자인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남성경 크리에이터
어찌 보면 류 전 감찰관 본인부터 비상계엄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그 사무실로 다시는 못 돌아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얘길 꺼내며 류 전 감찰관은 "서운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나름대로 공직생활의 끝을 바라보면서 좀 멋진 모습으로 직원들과 한명 한명 인사하면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게 서운했다"며 "짐을 꾸리는 것도 직원들한테 신세를 져야 해 미안했다. 다시는 그 사무실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류 전 감찰관은 12·3 계엄이 국민들 마음에 숨어 있던 수십 년 전 군부 독재의 트라우마를 일깨웠으며 소상공인 등의 매출 타격, 국가 신인도의 하락, 사회 여론의 극심한 분열 등 전국민적 고통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민주주의 제도와 사법시스템 등을 비롯해 긴 시간에 걸쳐 발전해 온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피해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파괴 행위였죠. 우리 국민이 계속해서 발전시켜 온 민주적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지난 1987년 이후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한꺼번에 무너졌고, 80년대도 아닌 70년대, 60년대로 되돌린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저지르고도 국민 앞에서 뻔뻔하게,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정말 속상합니다. 많이 속상합니다."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의 배신…"신군부 쿠데타보다 위협적"

전문가들도 류 전 감찰관과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날 밤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와 국가 시스템에 몰고 온 파장은 결코 '평화적', '경고성', '호수 위 달그림자' 등등의 표현으로 포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장을 지낸 헌법학자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변명은 "반(反)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언사"라고 질책했다. 그는 "실행에 옮긴 순간 내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만약 내란이 성공했다면 처벌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12·3 계엄은 민주주의적 헌정 질서의 작동을 실질적으로 멈추게 한 사태였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12·3 계엄은 국회를 비롯해 정상 작동되고 있던 국정 전반을 마비시키려는 시도였다"며 "만약 이 내란이 성공했다면 우리 사회는 완전한 암흑기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란 사태는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내란 사태의 수습과 극복을 위해 "먼저 사법부가 엄중하면서도 역사적인 의식을 갖고 내란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개헌을 비롯한 사법개혁 등으로 대통령의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사회 제도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학자인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와 민주주의 연구자인 신진욱 중앙대 교수. 박상철·신진욱 교수 제공헌법학자인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와 민주주의 연구자인 신진욱 중앙대 교수. 박상철·신진욱 교수 제공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연구해 온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2·3 계엄이 과거 신군부의 쿠데타보다도 전방위적이며 위협적인 내란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수방사와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 드론사에 경찰과 정보기관까지 전부 다 동원된 계엄은 역사상 처음"이라며 "과거엔 집권 세력 바깥에서 반란 군부가 있었지만, 이번엔 정당하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과 헌법에 대해 배신 행위를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이는 주요 국가들 중에서도 최초의 사례이며 그게 가능했던 데에는 "무력을 보유한 주요 국가 기관 지휘부 내에 어떠한 적극적인 반대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 전 대통령 곁에 있던 참모들 역시 내란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그는 또 12·3 계엄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지 않은' 증거로 남았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과거의 독재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되면 민주주의가 공고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모범적인 나라로 한국이 많이 꼽혀왔다"면서 "그러나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하는 등 독재화의 전형적이고 포괄적인 시도들이 계엄 때 모두 이뤄지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모래성처럼 허술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확인시켰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맨손의 시민들이 막았다는 점에서 큰 사건"

1년 전 12월 3일을 다시 회상하면 아찔하지만, 그럼에도 좌절되지 않는 건 그날 군과 경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시민들의 위대함 때문이다. 신진욱 교수는 지난 계엄을 '전군과 경찰, 정보기관까지 동원한 초유의 사태'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맨손의 시민들이 막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피청구인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윤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 中)

여전히 사태 수습은 더디고 멀어도 당장 실망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당부. "세월이 가면 분명히 뭐가 옳고 그른지는 드러난다"는 류 전 감찰관의 말이다.

"이제는 누구도 12·12 내란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이 사태를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일으킨 헌법질서,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고 배우게 될 겁니다. 그게 언제가 되든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그 점에 대해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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