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공천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여사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 출석,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과 금품수수(알선수재), 공천개입(정치자금법 위반).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전직 영부인 김건희씨에게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하면서 적용한 죄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V0'로 불리며 영부인 지위를 사유화하고 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김건희씨의 말로가 처참한 모양새다.
특검 "최고형도 부족"에 '헛웃음' 김건희 "억울한 점 많아"
윤석열 정부 국정농단 의혹의 '몸통'인 김건희씨에 대한 1심 재판 심리가 3일 끝났다. 특검이 김씨에게 적용한 3가지 혐의 중 핵심은 자본시장법 위반과 알선수재다.
특검은 김씨가 "사법시스템과 국가통치시스템, 선거의 공정성,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켰다"고 날서게 비판했다. 중형을 구형한 이유에 대해선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부끄럽게 기록될 법치 파괴 행위는 기존 양형이 포섭할 차원을 넘어섰다. 각 최고형이 선택되더라도 부족함이 크다"고 강조했다. 민중기 특별검사도 이날 이례적으로 법정에 직접 출석했다.
이날 검은 뿔테 안경에 하얀 마스크를 거꾸로 착용한 김씨는 교도관 부축을 받으며 입정했다. 징역 15년에 벌금 20억원이라는 특검 구형을 듣고서는 헛웃음을 지으며 "저도 너무 억울한 점이 많지만 잘못한 것이 많은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특검이 말한 것처럼 하는 건 좀 다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1심 선고 기일은 내달 28일이다. 1심 선고의 관건은 '김건희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 공범'이라는 특검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 여부다.
특검은 김씨가 1차 작전 시기 주포에게 16억원이 든 증권계좌를 맡긴 뒤 손실보전금 4700만원을 받았다고 본다. 또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측에 20억원을 맡겨 매매 수익의 40%를 주기로 약정한 정황도 잡았다.
김씨가 2011년 1월 13일 자신의 계좌를 관리하던 증권사 지점장에게 "내가 40%를 주기로 했다" "거기서 달라는 돈이 2억7천만원"이라고 말했고, 같은날 실제로 2억7천만원어치 수표를 인출했다는 것이 특검의 수사 결과다. 특검은 김씨가 3800여차례 통정·이상매매를 해 8억1천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고 보고 있다.
김씨 측은 1차 주포 이모씨가 최근에서야 진술을 번복한 데다, 주가조작 일당과 주가조작을 인지한 상태로 직접적인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투자를 일임해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 주가조작을 몰랐다는 주장이다.
통일교 청탁에 관여(알선수재)한 혐의에 대해서는 김씨가 실제로 통일교 현안이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도록 관여했는지 여부가 주요한 판단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이미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통일교 측에서 보낸 샤넬 가방 2개 등을 수수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다만, 6천만 원 대 그라프 목걸이는 받은 적이 없고, 통일교 측에서 제시한 각종 청탁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금품의 '대가성'이 있었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공천개입 혐의는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이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은 일과 김영선 전 의원에 공천이 된 일이 서로 연관되며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가 유무죄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명품 날름 받고, 어좌에 앉은 영부인
건청궁 장안당 왕의 집무실·김건희 씨. 문화재청·대통령실 제공 특검은 지난 7월 출범 이후 김건희씨 관련 여러 의혹을 두드리며 영부인으로써 김씨가 지위와 공적 권한을 사유화한 정황을 하나둘 모아왔다. 특검 수사에서는 김씨가 받은 각종 인사 청탁 정황이 줄줄이 튀어 나왔다. 명품 등 고가의 물품을 건넨 뒤 공직이나 이권을 보장받는 패턴이 반복됐다. 반클리프 목걸이(서희건설)와 바쉐론 시계(로봇개 사업), 금거북이(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등 매관매직 의혹의 증거들이 잇따랐다. 특검 내 한 고위 인사는 "단순한 국정 관여를 넘어서 국정을 농단하고 시스템을 사유화한 중범죄 행위"라고 짚었다.
대선 때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김씨의 말은 윤 전 대통령 임기 시작과 동시에 허언이 됐다. 김씨는 'V1'인 윤 전 대통령보다 더 강한 권한을 휘두른다는 'V0'로 통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 마포대교를 순찰하면서 경찰과 관계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해 논란을 자초했다. 2023년 9월에 경복궁 근정전 어좌에 돌발적으로 앉은 사진이 최근 공개돼 뭇매를 맞았다. 같은 해 종묘 망묘루에서 외부인과 차담을 갖고 국가 유산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 대통령실 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국정에 관여한 것을 넘어 선거 때마다 김씨가 크고작은 역할을 한 정황도 특검 수사 선상에 올랐다. 김씨가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공모해 통일교인 수천명을 국민의힘에 가입시켜 2023년 전당대회에서 권성동 의원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58회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고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피고인이기도 하다. 특검은 그 대가로 김씨가 남편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과정에 관여했다고 의심한다.
남은 수사 산더미…줄줄이 재판 기다린다
법정에 세우지 않은 혐의가 더 많다. 최근 불이 붙은 것은 김씨가 자신의 사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박성재 전 장관을 통해 검찰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수사 개입' 의혹이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내란 특검을 상대로 영장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해당 의혹 관련 증거물을 확보했다.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으로부터 '나토 3종 세트'를 받았다는 의혹이나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등의 매관매직 의혹은 이미 상당 부분 수사가 끝나 당사자 김건희씨에 대한 대면 조사가 남은 상태다. 특검은 이날(4일) 오후 2시부터 김씨를 해당 의혹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