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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죽었음"…정보라가 번역·기획한 좀비소설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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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보라 작가
'브로츠와프의 쥐들' 장르문학의 가장 날카로운 질문
전염병·통제·폭력의 은유…"군사독재 한국 겹쳐 보여"

정보라 작가 ⓒ정혜정보라 작가 ⓒ정혜
"이건 한국에 꼭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염병이 퍼지고 도시가 봉쇄된다. 군인과 경찰이 거리를 통제하고, 병원과 수용시설은 보호의 공간이 아니라 관리의 공간이 된다. 폴란드 SF 문학의 거장 로베르트 J. 슈미트가 폴란드를 배경으로 쓴 좀비 소설 3부작 '브로츠와프의 쥐들'(다산책방)은 익숙한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은 다소 낯설다.

이 시리즈가 최근 한국어판으로 완간됐다. 번역을 맡은 이는 '저주 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과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고 '너의 유토피아'로 올해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필립 K. 딕상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다. 이번 출간은 출판사가 먼저 제안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보라가 직접 선택해 기획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보라는 2일 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번역 이전에 '이건 한국에 꼭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시리즈가 폴란드에서 2014년에 처음 출간됐지만, 전염병과 격리병동, 완치할 수 있는 약이나 의학기술이 없는 상황이라는 설정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현실과 강하게 겹쳐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2022년쯤이었어요. 아직 코로나19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시점이었고,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브로츠와프의 쥐들'은 1부 '카오스', 2부 '철창', 3부 '병원'으로 구성된 장편 시리즈다. 각 권은 각각 도시, 감옥, 병원을 배경으로 삼으며, 군인·경찰·교도관·의료진 등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정보라는 특히 1권에서 인민경찰과 군, 공산당 중간 간부들이 모여 전염병 사태를 논의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꼽았다. 그는 "이들이 좀비 전염병 사태를 해결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 기회로 여기는 모습이 나온다"며 "밀실에서 권력자들이 술을 마시며 사회의 커다란 문제를 게임처럼 다루는 장면에서 술 마시다 살해당한 어떤 독재자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정보라 작가 ⓒ정혜정보라 작가 ⓒ정혜
정보라는 이 작품을 읽으며 "1960년대 공산주의 폴란드와 군사독재 시기 한국이 겹쳐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 겹침이 가장 강하게 느껴진 지점으로 "통제와 관리의 언어가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들"을 꼽았다.

다만 그는 작품 속 좀비를 특정한 정치적 상징으로 규정하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정보라는 "독자분들이 각자 읽고 해석하고 느끼는 게 다 맞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상징보다는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전염병의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조류독감,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를 겪었잖아요. 또 어떤 신종 전염병이 생겨날지 모릅니다. 좀비 전염병도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3부작의 구조에 대해서는 각 권이 서로 다른 권력과 인간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보라는 "'카오스'와 '철창'에서는 군인, 경찰, 교도관이 주인공이 되어 권력과 통제의 관점에서 상황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특히 "격리병동 환자를 범죄자처럼 다루는 모습이 메르스 시기 한국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마지막 권 '병원'은 시선이 달라진다. 그는 "3권에서는 니엠추크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이 등장해 환자를 관리 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인간으로 바라본다"며 "어쨌든 다 같이 살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다는 공동체적인 관점이 앞선 두 권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다산책방 제공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다산책방 제공 
번역 과정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선별진료소 장면을 꼽았다. 정보라는 "아직 좀비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나 미성년 환자까지 무조건 죽음의 길로 보내는 장면에서 나치 강제수용소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원작자인 로베르트 슈미트가 폴란드 사람이니, 분명히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염두에 두고 썼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주의 폴란드 시대에 대한 아주 강한 비판이라고 느끼며 번역했어요."

소설가이자 번역가로서 작품 속에서 두드러졌으면 했던 내용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개입하고 싶었던 순간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가라기보다 독자와 번역자의 입장에서 흠뻑 몰입하며 작업했다"며 "홀랑 다 죽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번역하면서도, 작업을 마친 뒤에도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정보라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좀비보다 더 섬뜩하게 느끼길 바랐던 지점으로 '신종 전염병에 대한 대응'을 꼽았다. 그는 "메르스 시기의 잘못된 대응을 교훈 삼아,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났을 때 의료진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번역 과정에서 나눈 원작자와의 대화도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정보라는 "로베르트 슈미트가 '브로츠와프의 쥐들'이 한국 배경으로 번안돼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가 '부산행', '지금 우리 학교는', '킹덤' 등 한국 좀비물을 대부분 알고 있어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군사독재 시절 배경의 좀비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며 "군대, 감옥, 병원처럼 통제와 관리가 핵심인 조직들이 등장하는 한국 배경 좀비 이야기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라 작가 ⓒ정혜정보라 작가 ⓒ정혜
'브로츠와프의 쥐들'은 장르소설이지만 동시에 매우 정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르문학이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해 묻자, "장르소설은 언제나 정치적"이라는 정보라는 "대중문학이라서 사회적으로 좀 덜 진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창작자가 좀더 마음 놓고 정치적인 요소를 삽입할 수 있다"며 "저는 가장 날카로운 사회비평은 SF, 추리소설, 호러소설에서 발견한다. 예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3부작이 모두 완간된 지금, 정보라에게 이 시리즈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달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부 죽었음'입니다. 스포일러네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에는, 이 작품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그리고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으로는 단 하나를 제시했다.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이 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브로츠와프의 쥐들'은 장르소설의 형식을 빌려, 재난 앞에서 반복돼 온 사회의 얼굴을 묻는다. 정보라가 선택해 한국에 옮긴 이 시리즈는, 좀비보다 인간의 태도가 더 현실적이고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끈질기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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