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훈장. 연합뉴스이재명 정부가 과거 간첩 조작 등으로 보국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의 상훈을 대거 박탈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보국훈장은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이다.
앞서 시민사회에선 조작 사건 피해자들은 과거사위원회 조사, 재심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무죄를 밝히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가해 공무원들은 유공자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전날(18일) 관보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11명에 대해 '국가안전보장 유공' 정부포상을 취소했다.
보국훈장 서훈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된다. 국가보훈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보훈예우수당이나 보훈병원 치료비 감면, 학습 보조비 지급, 자녀의 대입 특별전형 자격, 채용시험 가산점, 아파트 특별공급, 저금리대출 등 여러 혜택을 받는다.
1970년 11월 김해영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의 홍조 근정훈장 관보 의결 문서.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제공이번 취소 대상자 11명 모두 옛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또는 파견 공무원으로 훈장이나 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부 상훈법 8조 1항 1호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해 포상이 취소됐다.
우선 김해영(사망)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이 1970년 11월 받은 홍조 근정훈장이 취소됐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농지 사건' 수사·소송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
'구로농지 사건'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구로공단 조성을 명목으로 1950년 농민들에게 분배된 서울 구로동 땅 30만평을 국유지로 편입하면서 벌어졌다. 해당 토지 소유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이후 정부가 벌인 수사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 등 인권침해가 자행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재심 대상으로 규정해 다시 소송전이 벌어졌고 2016년 대법원에서 피해자 유족들의 승소가 확정됐다.
나머지 10명은 간첩 조작 사건 유공자들이다. 한철흠(사망) 전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등 3명은 1982년 4월 '미법도 간첩 사건' 수사 유공으로 받은 포상이 취소됐다. 한 전 단장은 보국훈장 삼일장, 다른 직원 2명은 보국훈장 광복장과 보국포장을 받았다.
인천 미법도에 거주하던 정모씨는 1965년 10월 황해도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납북돼 한 달 만에 귀환했다. 안기부는 1982년 정씨를 불법 연행해 간첩 혐의로 수사했다가 무혐의로 풀어줬다. 1년 후 다시 안기부에 불법 연행된 정씨는 간첩 활동 자백을 강요받고 허위자백을 해 1984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정씨는 1998년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1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구미(歐美) 유학생 간첩단 사건' 수사 유공자도 대거 서훈 취소 대상에 포함됐다. 1985년 전두환 정권 안기부는 미국과 서독 등 유학생들이 북괴에 포섭된 뒤 국내에 잠입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관련자들은 사형 판결을 받고 십수년간 옥살이를 하다 풀려났고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
이번 서훈 취소는 2020년 이후 6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서훈 취소 대상자 11명 중 2명으로부터 실제 훈장 등을 돌려받았다. 9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등 이유로 포상을 회수하지 못한 것이다.
법무법인 원곡의 공익법률지원센터(파이팅챈스) 변상철 소장은 "서훈을 박탈할 근거 자료가 정부에 있다는 것이 이번 서훈 취소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국가 폭력 재심 사건 목록 등을 바탕으로 서훈 취소 근거 자료 유무를 부처별로 확인하고 조속히 나머지 포상에 대한 취소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