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공기는 따뜻하다. 따뜻하지만 습하다. 며칠 사이 차고 건조하던 공기가 바뀌었다. 벌써 여름의 기운이 묻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통밀빵에 버터를 발라 먹는다. 입가에 빵 부스러기 붙는다. 따뜻하게 데운 두유를 마신다. 조금 전 그에게서 도착한 톡이 수면을 떠다닌다. 마음이 산란하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안녕하세요. 교수님. 1학년 a반 202659xxxx 고원정(가명)입니다. 정신과 질환으로 계속 병원에 다니다 완화되어 단약 이후 최근에 다시 여러 사유로 악화된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 과호흡 증상에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병원에 가야 해서 오늘 수업은 어려울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결석 처리를 배려해 달라는 의미인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스물두 살 청년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 고원정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출석부에는 추후 진료확인서를 받으면 되니까 출석으로 처리했다. 일주일 후에도 그는 결석했다. 어떻게 된 걸까.
"고원정과 친한 학생 있나요?"
1학년이라 하지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동네에서 이 사람과 친한 사람이 누군가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경찰관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경광등의 붉고 푸른 빛이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일그러진 얼굴을 쓸고 간다. 그는 칠순을 넘긴 아버지와 앙숙처럼 지낸다. 아버지 때문에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믿는다. 어머니가 일찍 죽은 것도, 아내가 집을 나간 것도, 남매가 어머니를 따라 도시로 나간 것도 다 아버지 탓이다.
시골집에 아버지와 아들만 남았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나갈 때는 발랄하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골목길의 쓰러진 자전거 옆에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다.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긁힌 볼에 마른 핏물이 들러붙어 있다.
그날 밤은 아버지와 유난히 격한 싸움이 벌어졌다. 창고에서 낫을 들고나와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이장이 경찰에 신고했다. 야밤에 세 명의 경찰관이 순찰차를 타고 도착했다. 동네 사람들은 손에 낫을 들고 있던 그가 마당에서 체포되는 것을 보았다.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순찰차에 실려 갔다. 그날 밤 경찰관에게 연행된 후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오래전 도시 근교의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살던 때 겪었던 일이다.
처음 톡이 온 뒤 셋째 주 수업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고원정 학생 소식 아는 사람 있나요?"
"자퇴했답니다."
과 대표가 알려준다.
"왜 자퇴를 한 거지?"
아는 학생은 없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병원에 가야겠다며 톡을 보낸 것을 받아본 것뿐이다. 고원정은 그렇게 사라졌다.
어쩌다 주변 사람에게 사라진 학생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감정의 흐름이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되게 만드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게 된다. 그가 개인적으로 비통함을 느끼며 홀로 정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그날 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관에게 연행된 그는 사계절이 흘러 봄이 지나갈 무렵 나타났다.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천국에서 한철을 살다가 돌아온 사람 같다.
처음 맞는 일요일 아침. 정장 차림에 푸른 넥타이를 메고 머리카락에 포마드를 발라 뒤로 빚어 넘긴 그는 미소를 지었다. 오른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는데 귀한 보물처럼 가슴에 묻었다. 동네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경건했다.
그의 사계는 어떻게 흘러간 걸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정신 요양원에 강제 입원했다는 것이다. 그 일 년 동안 변신을 했다. 곤충이 허물을 벗듯…… 나비 잠자리 매미 누에처럼. 자의든 타의든 탈피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그와 마주친 것은 동네 골목에서였다. 그는 자전거와 나란히 누워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 그의 얼굴이 처량하기도 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반갑기도 했던 것은 양가감정 탓이다. 시골로 돌아와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하고 약 처방도 없이 지낸 탓이다. 그는 다시 외골격이 단단해지기도 전, 옛 껍질로 숨어든다.
1학년 a반 202659xxxx 고원정은 사라진 채 원형만 떠돈다. 일 년이 지나 봄의 끝자락이 지나가는 오늘도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의 사계에는 서로 다른 개인사적인 체험이 발자국처럼 찍혀 있다. 상실과 비통과 환희와 다시 추락하는 절망을 반복하면서……
그래서 사라진 그의 소식이 어느 날 불쑥 빗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환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이 두렵다. 그럴 때면 '허물을 벗는 일은 복되다. 탈피하지 못하고 벗어던진 껍질로 되돌아가려는 영혼도 복되다.' 스스로 주문을 건다.
나에게는 두 남자의 모험을 가치로 단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보다는 다행이라며 감사할 때 마음이 고요해진다.
통밀빵에 버터를 바른다. 한입 물 때마다 빵부스러기가 입가에 붙는다.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두유를 마신다. 아침 공기는 따뜻하고 약간 습하다. 여름이 가까운 숲에 도착해 있다. 아침 식탁에 울리는 톡은 열어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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