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무소속 노관규 후보(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손훈모 후보. 노 후보는 순천 최초 4선에 도전했지만 손 후보가 승리했다. 박사라 기자 6·3 지방선거에서 전남 동부권 주요 시·군의 수장이 대거 교체됐다.
순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손훈모 후보가 순천시 최초 4선에 도전한 무소속 노관규 후보를 꺾고 시장에 당선됐고, 광양에서는 무소속 박성현 후보가 현직 정인화 시장을 누르고 승리했다. 구례 역시 민주당 장길선 후보가 당선되면서 현직 군수 체제가 막을 내렸다. 이로써 고흥과 보성을 제외한 전남 동부권 시·군 단체장이 모두 새 인물로 바뀌게 됐다.
민주당 바람에 4선 피로감까지…순천서 뒤집힌 판세
선거 과정에서는 현직 프리미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순천은 노관규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였고, 광양 역시 정인화 시장의 재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구례 또한 3선에 도전하는 김순호 군수의 조직력과 인지도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세 지역 모두 현직 단체장들의 조직력과 고정 지지층이 주목을 받았다. 지역사회에서도 현직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선거 기간 형성됐던 분위기와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순천과 광양, 구례 모두 현직 또는 현직 체제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고배를 마시면서 동부권 곳곳에서 변화의 흐름이 확인된 것이다.
순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손훈모 후보가 7만 1290표(46.85%)를 얻어 순천 최초 4선에 도전한 무소속 노관규 후보(6만 2040표·40.77%)를 6.08%포인트 차로 제치고 시장에 당선됐다.
지역 정가에서는 민주당 조직력과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형성된 민주당 우세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 안정론이 선거 막판 표심 결집으로 이어지면서 손 후보가 역전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노 후보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선 8기 들어 순천만국가정원과 우주·방산 산업 육성, 문화콘텐츠 산업 기반 구축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정 운영 과정에서의 소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층은 분명 존재했고 성과를 인정하는 시민들도 많았다"며 "다만 4선 도전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고, 시정 운영 과정에서 시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분위기가 선거 막판 민주당 지지층 결집과 맞물리면서 결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광양시장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정인화 후보(왼쪽)와 무소속 박성현 후보. 박 후보는 공천 배제와 법적 공방 끝에 당선됐다. 각 캠프 제공 무소속 강세 지역 특성에 공천 갈등 변수까지
광양은 순천과는 결이 다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광양은 경남 하동과 접해 있고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산업도시 특성상 전남에서도 무소속 후보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 무소속 후보들이 잇따라 시장에 당선되면서 독자적인 정치 문화를 형성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 과정도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
무소속 박성현 당선인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법 전화방 운영 의혹으로 후보 자격이 박탈됐지만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후보 자격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졌고 법원이 잇따라 출마 자격을 인정하면서 선거를 완주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전남도당과의 갈등이 선거 기간 내내 이어지면서 오히려 박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원래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 출신인 박 후보가 지역에서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며 "공천 배제와 법적 공방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알려졌고 일부에서는 동정 여론도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광양은 원래 무소속 후보들의 경쟁력이 강한 지역인데 민주당 공천 과정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지면서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구례군수 선거에 나선 김순호 군수(왼쪽)와 장길선 당선인. 장 당선인은 다자 구도 속에서 승리를 거뒀다. 각 후보 측 제공 3선 도전 무산…구례서도 현직 체제 교체
구례에서는 현직 군수 체제에 대한 피로감이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3선에 도전했던 김순호 군수는 민주당 경선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 정가에서는 경선 결과 자체가 이미 민심 변화를 보여준 신호였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장길선 당선인은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변화를 강조했고, 다자 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역 정치권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지역별 사정은 달랐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일정한 흐름이 읽힌다고 보고 있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세 지역 모두에서 변화에 대한 기대가 확인됐다"며 "특히 겉으로 드러난 여론과 실제 투표장에서 나타난 민심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나 이른바 '빅 스피커'들의 발언이 수면 위로 많이 노출되다 보니 선거 분위기가 그쪽으로 쏠려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그런 흐름과 실제 민심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세 지역 모두 현직 단체장들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며 "다만 유권자들이 성과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과 시민을 대하는 태도, 소통 방식까지 함께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 지역의 사정은 달랐지만 현직들의 성과와 인지도가 예전처럼 표로 직결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결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만족도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