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단독]'건설 비계'서 '화물차 적재함'으로…바뀐 추락 위험지도 (계속) |
매년 산업재해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떨어짐(추락)' 사고 가운데 화물차 등 '운반 차량'에서의 추락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대표적인 추락 위험 장소로 꼽혔던 건설현장 비계 사망은 크게 줄어든 반면, 화물차 적재함 등 운반 차량에서의 추락은 증가세를 보이며 단일 기인물 기준 1위에 올랐다.
화물연대 등 노동계는 안전운임제 공백기 동안 화물 노동자들에게 화물 결박과 상하차 등 위험한 운전 외 업무가 집중되면서 빚어진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재 예방의 초점이 대규모 건설현장에 맞춰진 사이, 도로 위를 달리는 대형 운반 차량이 새로운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계 추락은 반토막…'운반 차량'이 단일 기인물 1위 등극
22일 고용노동부의 2025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산업재해 사망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고사망자 872명 가운데 280명(32.1%)이 떨어짐으로 숨져 여전히 가장 큰 사망 원인으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산재 승인 보상 통계 기준 기인물별 떨어짐 사망자 현황(2021~2025년)'을 분석한 결과, 전통적인 위험 요인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새로운 사각지대가 부상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2025년 단일 기인물 기준 추락 사망자는 '육상운반 및 특장차량'이 42명으로 가장 많았다. 육상운반 및 특장차량은 화물 적재를 위한 대형 트럭과 덤프트럭, 탑차, 폐기물 수거차 등 특수 장비가 장착된 차량을 포괄한다.
통상 도로 위를 달리는 이동 수단으로 인식되지만, 짐을 싣고 내리는 순간에는 안전난간조차 없는 작업장으로 바뀐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광주 광산구의 한 고무제품 제조 사업장에서 화물노동자가 트럭 적재함에서 내려오다 1.4m 높이에서 추락해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운반 차량 추락 사망자는 2021년 31명에서 2023년 35명, 2024년 43명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도 42명을 기록하며 가장 치명적인 단일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뒤를 이어 '지붕 및 대들보'가 37명으로 2위, 건물 가장자리인 '단부'가 26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반면 그동안 추락 사망의 대표적 위험 요인으로 꼽혔던 '비계' 사망자는 2021년 55명(당시 지붕·대들보와 공동 1위)에서 2025년 25명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비계는 '사다리'(25명)와 함께 공동 4위로 내려앉았다.
이어 '개구부'(22명), '철골빔 및 트러스'(19명), '기타 건물 구조물'(12명), '작업발판'(11명), '인양설비 및 기계'(9명) 순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비계나 사다리처럼 비교적 정형화된 작업환경에서의 사고는 줄어드는 반면, 차량 위나 지붕 등 비정형 작업 공간에서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만 유족급여 승인 통계는 사고 발생 시점과 승인 시점 사이에 시차가 존재해 특정 정책의 효과를 단기간에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2025년 승인 통계에는 2024년 이전 발생 사고도 절반 가까이 포함돼 있다. 또한 2023년 7월 전속성 요건 폐지 이후 화물차주 등 노무제공자의 산재보험 가입이 149만 명 규모로 크게 늘면서 그동안 통계에 포착되지 않았던 사고가 새롭게 반영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해당 통계는 산업재해사고사망만인율 산출의 기준 자료로 활용되는 만큼, 장기적인 위험 요인의 변화와 산재 예방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평가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운전 외 상하차 업무 다시 봐야"…안전운임제 공백 지적도
전문가와 현장 종사자들은 추락 위험의 이동 배경으로 화물 노동자들에게 전가된 운전 외 업무를 지목한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의 오민규 연구실장은 "화물트럭이나 덤프트럭 기사들이 적재 화물을 정비하거나 덮개를 씌우기 위해 차량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사고가 많다"며 "대형 화물기사들에게 상하차와 하역 업무가 무분별하게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차 적재함 높이는 대개 2m 안팎인데, 보호장비 없이 추락할 경우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강태선 교수는 "상하차 작업은 원래 위험성이 높은 업무인데 대기업 사업장과 달리 영세 사업장에서는 안전관리자나 유도 인력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며 "속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위험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운임제 공백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적정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2022년 말 일몰됐다가 올해부터 다시 시행되고 있다. 안전운임제가 폐지된 이후 과적이 늘어나고, 적정 단가가 무너지면서 짐을 관리하는 위험 노동이 기사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졌다는 주장이다.
화물연대 박재하 정책선전국장은 "안전운임제 일몰 이후 과적과 과속 등 위험 노동이 심화됐다"며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으로 화물노동자의 안전보건상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건설 관련 기인물 여전히 많아"…발생 높이 통계는 없어
고용노동부는 운반 차량 추락이 단일 기인물 기준 1위가 된 현상을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추락 사망은 여전히 지붕, 비계, 사다리, 작업발판 등 건설 관련 기인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건설 분야는 기인물 분류가 세분화돼 있어 육상운반 및 특장차량이 단일 항목 기준으로 가장 많이 나타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붕·대들보, 단부, 비계, 개구부 등 건설 관련 기인물을 합산하면 여전히 건설현장 추락 사고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노동부 역시 운반 차량 추락 증가 원인에 대한 별도 분석은 진행하지 않은 상태다.
추락 사고는 반드시 고층 작업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는 전체 추락 사망 가운데 2m 미만 낮은 높이에서 발생한 사고 비중을 약 10% 내외로 추정하고 있지만, 발생 장소나 추락 높이에 대한 공식 통계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유족급여 승인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의 보상 승인 건수를 집계한 자료라 실태조사 수준의 세부 통계를 산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추락 위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초 통계와 원인 분석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새로운 위험에 맞춘 산재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