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기자회견 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홍명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홍 감독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다음 날인 29일(한국시간) 대표팀 베이스캠프였던 멕시코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홍 감독은 별도의 질의응답을 받지 않은 채, 준비해 온 약 2분 분량의 입장문을 무거운 표정으로 낭독하며 사퇴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홍 감독은 입장문을 통해 "먼저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해주시고 언제나 대표팀을 응원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오늘 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는 제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감독을 맡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하는 것만을 유일한 임무로 생각했다"면서 "지난 2년 동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나 선수를 선택할 때, 훈련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를 때도 '이 선택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늘 던졌다"고 소회를 전했다.
아울러 "모든 판단이 늘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 모든 판단의 기준만큼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다"고 강조한 홍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는 어떤 설명도 어쩔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설명보다 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들께서 원하는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고,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저에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끝까지 함께 해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지원 스태프, 그리고 대표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오늘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우리 대표팀이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팀으로 성장해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다"고 입장문 낭독을 마쳤다.
지난 2024년 7월 8일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의 당초 임기는 2027년 1월에 열리는 아시안컵까지였다. 그러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임기를 반년가량 남겨두고 중도 퇴진하게 됐다.
개최국 멕시코를 비롯해 체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A조에 속했던 한국은 조 3위로 밀려나며 대회를 마감했다. 체코와의 1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2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패한 데 이어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오를 수 있었던 남아공과의 최종전마저 0-1로 덜미를 잡혔다.
결국 조 3위를 기록한 12개 팀 간의 성적 비교에서 10위에 그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참가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최종 순위는 34위다. 32개국 체제였던 지난 대회 기준이라면 본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성적이다.
사퇴 기자회견 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이로써 홍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맞이한 두 번째 월드컵에서도 아쉬운 결말을 맺었다. 앞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1무 2패에 그치며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홍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감독으로서 두 차례 월드컵 무대를 밟았으나, 끝내 명예 회복에 실패한 채 조기에 물러나게 됐다.
홍 감독의 이번 여정은 출범 당시부터 순탄치 않았다.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다른 후보군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홍 감독을 내정했다는 불공정 논란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국회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임기 내내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시밭길 행보가 이어진 배경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6승 4무 무패라는 성적으로 통과하긴 했으나, 이후 치러진 평가전에서 브라질(0-5 패), 코트디부아르(0-4 패) 등에 잇따라 대패하며 흔들렸다.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지자 축구계를 중심으로 경질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 대회, 2022년 카타르 대회에 이어 통산 세 번째이자 2회 연속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수와 코치, 감독을 통틀어 개인 통산 일곱 번째 월드컵 무대에 섰던 홍 감독은 결국 쓸쓸하게 멕시코를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