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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다 죽어"…홈플러스 사태에 돈줄 묶인 협력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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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의 한 협력업체 미회수금만 17억원
넉 달째 납품대금 막히자 농가·물류업체까지 연쇄 위기
"납품 멈추면 지역경제도 멈춘다" 호소
협력업체 미수금 전수조사·우선 변제 등 촉구

경북 상주시의 한 농장 모습. 독자 제공경북 상주시의 한 농장 모습. 독자 제공
경북 지역에서 20년 넘게 홈플러스에 감자를 비롯한 여러 농산물을 납품해온 영농조합법인 대표 A씨(60대)는 요즘 하루하루가 버티기의 연속이다.

A씨는 지역 농가들과 재배계약을 맺고 농산물을 공급해왔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 전국 각지 홈플러스 매장으로 신선한 농산물을 보내기 위해 물류업체들과도 꾸준히 협력했다.

이 업체의 납품망이 농가와 운송업체, 지역 일자리까지 연결하는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온 셈이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 같은 상생 구조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홈플러스로부터 받아야 할 납품대금이 수개월간 지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 업체의 미회수금은 넉 달여 만에 17억원까지 불어났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

A씨는 "당장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농가와 물류업체에는 돈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젠 견뎌낼 여력이 없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납품 멈추면 농가·물류 등 지역경제도 함께 멈춘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납품대금 지급 지연이 장기화하면서 협력업체들의 생존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홈플러스 파산 위기 사태로 그동안 상품을 공급해온 협력업체들이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경영난에 내몰리고 있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홈플러스 내부의 노동자 고용 안정 이슈가 사회적 관심을 받아온 가운데, 외부 업체들까지 연쇄적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 납품되는 농산물. 독자 제공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 납품되는 농산물. 독자 제공
문제는 대금을 받지 못한다고 납품을 중단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A씨가 거래하는 농가 대부분은 영세 농업인이다. 물류업체들 역시 홈플러스 납품 물량을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 A씨가 자금을 제 때 지급하지 않으면 생산과 운송이 동시에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A씨는 홈플러스로부터 막대한 대금을 받지 못하고도 자체 자금을 투입해 농가와 물류업체 대금을 먼저 지급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납품을 이어가고 있다.

납품이 중단되면 거래망 자체가 붕괴되고, 향후 홈플러스가 정상화되더라도 사업을 다시 일으킬 기반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계속 함께 일해야 할 농가와 물류업체에는 내 돈이라도 지급할 수밖에 없다"며 "홈플러스의 대금 지급이 계속 미뤄지면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생계 만큼, 협력업체들의 위기도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 안 돼"…전수조사 촉구

홈플러스 농산물 납품 협력업체들의 기자회견. 이운식 전 경북도의원이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다. 독자 제공홈플러스 농산물 납품 협력업체들의 기자회견. 이운식 전 경북도의원이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다. 독자 제공
위기감에 따른 협력업체들의 원성은 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날 홈플러스 납품 피해자 모임은 성명서를 내고 "홈플러스에 상품, 용역을 제공하는 4603개 협력사 중 47%는 매출의 절반 이상이 홈플러스를 통해 발생하고 있다"며 "홈플러스가 회생하지 못하고 파산하면 중소 협력사들도 판매 채널을 잃고 함께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홈플러스는 대주주의 것만이 아니다"라며 "매장을 지켜온 1만 5천명의 직원들과 수천 개 협력사들이 함께 성장시켜온 모두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홈플러스 살리기를 위해 일부 협력사들은 상품 대금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계속 공급을 이어가며 힘을 보태고 있다"며 "협력업체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홈플러스 살리기 서명운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 협력업체들의 경우 지난달 9일 해도지영농조합법인과 한국라이스텍, 부광농산유통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난 2월부터 농축산물 등 식품 분야 납품업체들의 대금 지급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협력업체들은 피해 규모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지급 일정과 대책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 없이 개별 통보만 이어지면서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금이 끊긴 이후에도 유통망 붕괴를 막기 위해 계약재배 비용과 물류비, 보관비, 인건비 등을 계속 자체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협력업체들은 전체 미수금 규모를 2천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식품 분야 미수금만 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상태가 장기화하면 협력업체와 계약재배 농가, 물류업체 등 생산·유통망 전반으로 연쇄 도산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들은 △홈플러스 협력업체 미수금 전수조사 △피해 업체와 농업인 대상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 및 최대채권자인 메리츠의 긴급운영자금 대출 △납품업체 채권 보호를 위한 우선변제 제도 적용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법원 판단 기다리는 홈플러스…납품대금 지급 '안갯속'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박종민 기자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박종민 기자
홈플러스는 현재 기업회생 절차와 관련한 서울회생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 측은 협력업체 미지급 납품대금의 지급 여부와 우선순위와 관련해 회생절차에 따른 법원 판결 사항으로, 홈플러스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권한은 없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외에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추진 이후 기존 120여개 대형마트를 절반 수준인 60여개 핵심 점포 중심으로 재편했다. 또 임대료 조정과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분리 매각, 자연퇴사·희망퇴직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업과 납품이 정상화되면 주요 점포 체제만으로도 연간 800억 원대 영업이익을 낼 수 있고, 정상화 3년 안에 1500억 원대 영업흑자도 가능할 것으로 홈플러스는 전망한다.

다만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더라도 협력업체들의 미지급 납품대금이 우선적으로 변제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결국 법원의 회생 결정만으로는 협력업체들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유통업체 한 곳의 위기가 납품업체를 넘어 농가와 물류업체, 지역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에 대한 서울회생법원의 회생계획안 가결 여부 결정 시한은 오는 3일이다. 재판부가 추가 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한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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