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법원이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함에 따라 한때 전국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28년 역사의 홈플러스는 사실상 파산 선고를 받게 됐다. 이날 결정에 대해 14일 이내에 즉시 항고할 수 있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한 홈플러스는 파산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법원 역시 "홈플러스가 자금 조달 후 즉시항고하면 정당한 이유가 인정될 수 있다"며 자금조달이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홈플러스가 마땅한 자금줄을 찾지 못해 파산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대량 실직 사태를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최우선 과제는 자금조달이지만…보이지 않는 돈줄
서울 홈플러스 강서점 모습. 황진환 기자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정준영 법원장)는 3일 홈플러스의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전성기에는 전국 140여개 점포를 보유해 업계 2위까지 올랐던 홈플러스가 파산 수순에 접어든 것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과 5월 회생계획안 기한이 연장되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 부문을 NS홈쇼핑에 매각해 2천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자금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체인 대형마트 매각이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한 것이 치명타였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간의 '책임 공방'이 이어진 것도 악재였다.메리츠금융그룹은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MBK 회장의 보증을 조건으로 1천억원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금을 에스크로에 예치했지만, 나머지 1천억원에 대해서는 MBK 측이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MBK는 이미 김 회장이 개인 증여 등을 통해 수천억원의 자금과 신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했다며 버텼다. 메리츠의 요구를 거부하던 MBK는 법원이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하고서야 메리츠측의 조건을 수용하기로 하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새로운 자금줄 발견에 실패하자 홈플러스는 지난 6월에는 직원들에게 월급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법원은 홈플러스의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기업회생절차 가결 시한 연장의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홈플러스는 법원 결정이 나오자 입장문을 내고 "고객과 임직원, 입점업체, 협력업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진행될 법적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채권자와 직원 등 이해관계자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메리츠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새로운 자금을 마련해 항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파업 확정시 1만명 넘는 대량 실업 직면, 납품 중소기업 줄도산 우려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홈플러스 정상화' 정부 결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류영주 기자
홈플러스가 최종 파산할 경우 심각한 후폭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홈플러스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직 문제가 가장 먼저 닥쳐올 피해다. 한때 1만 8천여명에 달했던 홈플러스 노동자수는 MBK 인수 뒤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현재 9천여명~1만 2천여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직고용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마트 내에 입점한 자영업 점주, 물류 배송기사, 보안·미화 등 외주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홈플러스 파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노동자는 10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부양가족까지 약 30만 여명의 생계에 피해가 불가피하다.
납품 중소기업·소상공인 150곳이 아직 받지 못한 납품 대금 규모만 업체당 평균 7억 7400만원에 이른다. 일반 상거래 채권이 후순위 채권이라는 특성상 이들 대금은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영세한 중소기업 특성상 줄도산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홈플러스가 연간 3조 원 이상의 농·축·수산물을 유통해 왔다는 점에서 농가에 미칠 영향도 상당하다. 홈플러스가 해마다 매입한 국내산 농산물 판매액만 연간 1조 9천억 원에 달한다.
홈플러스 점포에는 식당가, 미용실, 약국, 세탁소, 유아 목욕 및 문화센터 등이 입주해 특히 지방의 경우 생활형 상권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홈플러스가 사라지면 이런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상점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된다. 지역 부동산과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동반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도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홈플러스 회생 및 대규모 실업 사태 방지 국회 중재 및 사회적대화기구 제안을 위한 제 정당 준비회의'를 열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 부심, 긴급 생계 안정 자금 지원
황진환 기자정부도 법원 결정이 나오자 긴급 대책을 내놨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홈플러스 관계기관 전담반(TF) 회의를 열고 근로자·중소 협력업체 보호에 중점을 두고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임금 체불 피해 근로자에게 1인당 최대 2100만원까지 체불 임금 대지급금을 지급하고, 1인당 1천만원 한도까지 체불액 범위에서 연 1.5% 저금리로 생계비 융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중위소득 50% 이하인 저소득 재직 근로자 대상으로는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연 1.5%로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실직 근로자들은 실업 급여로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6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재취업을 원하는 경우 구직 지원을 위한 취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 맞춤형 종합 취업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실업 급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근로자에게는 국민 취업 지원 제도를 통해 취업 활동 계획 수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저소득 구직자에겐 구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월 60만~100만원가량의 구직촉진 수당을 지급하며 실직 후 고용노동부 지원 직업훈련에 참여하는 근로자는 직업훈련 생계비 대부도 지원받을 수 있다. 직업훈련 생계비는 중위소득 80% 이하인 실업급여 비수급자를 대상으로 1천만원까지 금리 연 1.0%를 적용한다.
홈플러스를 주요 거래처로 하는 중소 협력업체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긴급 경영안정 자금 900억원,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특례 보증 3500억원 등 총 44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상공인 지원 한도인 기존 7천만원을 1억원까지 확대하는 반면 금리는 0.5%p 인하한다.
정부는 이미 은행권으로부터 상환유예, 만기 연장을 받은 업체를 위해 은행권 협조를 받아 추가적인 상환 유예, 만기 연장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