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돈이 없어 소송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마련된 '소송구조' 제도. 그런데 정작 소송구조를 신청하는 사건에도 인지대와 송달료를 내도록 한 현행 법원 예규를 두고, 제도 취지에 맞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신청자 A씨는 지난달 16일 소송구조 신청 사건에 부과된 인지대와 송달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청이 각하되자 이에 불복해 즉시항고를 제기했다. A씨 측은 즉시항고마저 기각되면 재판소원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체류기간 연장 등 불허가 처분 취소소송을 내면서, 본안 소송에 필요한 인지대와 송달료 26만 2천 원을 부담하기 어렵다며 법원에 소송구조를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구조 신청 사건에도 별도의 비용을 내라는 보정명령을 내렸고, A씨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인지 미보정을 이유로 신청 자체를 각하했다.
주목할 대목은 액수다. 소송구조 신청 사건에 부과된 비용은 인지대 1천 원과 송달료를 더해 총 1만 1900원. 본안 소송비용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하지만 A씨 측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단돈 1만 원이라도 무자력자에게는 재판정에 들어서는 문턱이 될 수 있고, 바로 그 문턱을 없애기 위해 만든 제도가 소송구조라는 것이다.
소송구조는 경제적 사정으로 소송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당사자에게 인지대와 송달료 등의 납부를 유예하거나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재판받을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A씨는 소송구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A씨를 대리하는 공익인권법재단 두루 소속 이상현 변호사는 소송구조신청서와 의견서에서 "A씨는 부동산이나 예금 등 별다른 자산이 없고, 보증금 30만 원·월세 27만 원의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날 때 지녔던 돈은 입국 전 공항에서 장기간 노숙하며 모두 소진됐고, 이후 취업 자격을 얻었지만 노숙 과정에서 얻은 질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인권단체 지원에 기대 생계를 잇고 있으며, 체류기간 연장이 불허되면서 외국인등록증을 반납해 신분증명과 의료지원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원이 비용 납부를 명한 근거는 대법원 예규인 '민사접수서류에 붙일 인지액 및 그 편철방법 등에 관한 예규'와 '송달료규칙의 시행에 따른 업무처리요령'이다.
A씨 측은 의견서에서 "본안 소송비용을 낼 돈이 없어 소송구조를 신청한 무자력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심사받고 싶으면 먼저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사법 제도의 내재적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소송구조는 경제적 자력이 부족한 사람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데, 신청 단계에서 다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취지를 원천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A씨 측은 법리적으로 민사소송법 제132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조항은 소송구조 신청이 있으면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도록 규정하는데, A씨 측은 그 취지를 신청 사건의 인지대와 송달료에도 유추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본안 비용은 유예하면서 정작 유예를 구하는 신청 절차의 비용은 그대로 물리는 것이 균형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다만 A씨 측도 이번 보정명령이 현행 예규를 충실히 따른 것이며 통상의 처리 관례에도 부합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예규와 관례가 정말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재판부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반면 실무에서는 인지제도가 재판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인 동시에, 무분별한 소송과 반복 신청을 막는 최소한의 진입장벽이라는 반론도 있다. 인지대가 없으면 근거 없는 소송이나 반복 신청이 늘어 법원의 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2011년 '민사소송 등 인지법' 사건에서 인지제도가 수수료 성격과 함께 남소 방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자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소송구조 제도가 갖춰져 있는 만큼, 인지제도가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가 판단한 것은 본안 소송의 인지제도 자체였지만, 이번에 다투는 것은 '소송구조 신청 사건'에까지 별도의 인지대와 송달료를 물리는 대법원 예규의 적용이 적절한지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재판청구권 침해가 아니라고 본 근거가 바로 소송구조 제도였는데, 그 소송구조에 접근하는 문턱을 다시 문제 삼는 셈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경제적 약자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소송구조 제도와, 무분별한 소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진입장벽 사이에서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논의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