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공산주의는 패배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분열과 혐오의 언어는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 연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밤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무대에 올라 "공산주의 체제는 미국 체제의 정반대이며, 공산주의 체제는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1776년 7월 4일 미국 13개 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현재의 강대국 미국으로 거듭나기까지 250년이 흘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국부: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이 강조했던 자유와 포용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베네수엘라, 이란 상황 언급하며 강한 미국 강조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당초 예상보다 1시간 30분 정도 지연됐다.
지난 주 미 동부를 덮친 최악의 폭염에 이어, 행사 당일 저녁 뇌우를 동반한 먹구름과 비바람이 밀려오면서 내셔널 몰에 운집한 시민들은 정부 당국의 안내에 따라 급히 인근 건물로 피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사가 연기되는 도중에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새벽 2시도 상관없다. 비 때문에 건국 250주년 행사를 멈추게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늦은 밤인 11시 15분에 연설이 시작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 4시에 단 한 사람 앞에서 연설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이 자리에 왔을 것"이라며 "번개가 우리를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에 도래한 건국 250주년 기념일을 자신의 정치·경제적 성과를 최대한 강조하는 자리로 만드는 동시에, 애국심을 기치로 더 강한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후반부에 자신의 대외정책과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보라. 우리는 그들의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언급했다.
또 "최근 이란 해군 전체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다. 159척의 배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고, 그 모든 일은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며 중동 전쟁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와 함께 유권자 등록시 시민권 증명 의무화와 투표시 신분 확인 강화 등을 담은 유권자 신분확인 강화법(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SAVE America Act)의 필요성도 역설하며 공화당의 정책 추진을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하고, 더 큰 용기를 보이고, 더 많은 발전을 이루고, 더 많은 불의를 바로잡고, 더 큰 위업을 달성한 국민은 없다"며 "250년 동안 미국은 전세계 모든 나라의 희망이었고, 약속이었고, 빛이었고, 영광이었다"고 애국심을 고취했다.
또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에는 거대한 제국, 광대한 왕국, 강대한 국가, 그리고 무서운 폭군이 있었다. 그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며 "2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공화국은 여전히 우뚝 서 있으며 강건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통합은 없다…11월 중간선거 의식한 정치행보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건국 250주년을 관통하는 전국민 화합의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초반부터 "공산주의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에게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특히 "공산주의는 암과 같다"며 "빨리 잘라 내야 한다"고 비유했다.
전날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서 한 연설에서 "공산주의는 진주만 공격이나 9·11 테러보다 더 큰 위협"이라며 미국이 현재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야당인 민주당을 향해서는 "공산당"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모어산에는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진정한 자유와 인권, 포용 등을 강조했던 건국 초기 정신과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2인자인 JD 밴스 부통령도 독립기념일 당일 뉴욕에서 열린 관함식에서 민주사회주의 비판 발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건국 250주년을 기점으로 '공산주의 경계령' 등 이념 프레임을 걸고 나선 배경에는 미국 정치권에서 최근 민주사회주의가 세력이 주목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무명의 맘다니가 뉴욕시장에 당선된 일을 신호탄으로,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뉴욕·콜로라도주 민주당 예비경선 등에서 민주사회주의 진영 후보들이 잇따라 승리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명암을 가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사회주의를 비롯한 정치세력이 확장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인 건국 250주년 행사를 활용해 이들에 대한 차단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든 미국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보수 이념을 행사의 중심에 두고 축제에 당파색을 입혔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AP통신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국민 통합의 기회로 삼아 온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당파적인 입장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