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사업자 발표하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연합뉴스캐나다 차기 잠수함(CPSP) 사업에서 우리 업체가 고배를 마시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블록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글로벌 특수를 누리고 있는 K-방산도 머잖아 좁은 울타리에 갇혀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6일(현지시간) CPSP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노르웨이와 공동입찰에 나선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으로 이뤄진 팀 코리아는 독일과 함께 적격후보(숏리스트)에 올라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이로써 한국 방산은 지난해 폴란드 수출(오르카 사업)에 실패한데 이어 또 다시 나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인도네시아에 209급 잠수함 3척을 수출한 게 유일한 해외 수주 성과다. 이후 인도네시아 2차 사업과 태국, 호주, 네덜란드, 인도 사업에서 독일과 프랑스 등에 밀려 번번이 쓴맛을 봤다.
이번 CPSP 사업은 60조원에 이르는 규모에다, 나토의 원년 멤버이자 G7(주요 7개국) 소속인 캐나다가 대상이라는 점에서 특히 기대와 관심이 높았다. 성공할 경우 잠수함이라는 전략자산을 나토 진영 내에 수출하는 상징성 뿐 아니라 장기적 실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재래식(디젤) 잠수함의 최강자 격인 독일과 막판까지 대등한 대결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정부 관계자는 "독일이 노르웨이로 가는 물량을 캐나다에 우선 배정하는 방법까지 써가며 납기를 단축하겠다고 한 것은 독일로서도 총력전을 펼쳤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측이 제안한 '장보고-Ⅲ 배치-Ⅱ'(3600톤급)는 성능 면에서 독일의 '212 CD' 잠수함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낫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더구나 장보고함은 이미 실전 운용 중인 반면 212 CD는 아직 설계도상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 업체가 프랑스와 스웨덴 등 쟁쟁한 유럽 업체를 제치고 독일과 최종 승부를 펼친 배경이었다.
독일에게 잠수함 기술을 배운 한국이 그로부터 35년 만에 '스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은 결과 여부를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준다.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는 "일종의 쇼케이스의 계기였다"며 "1만 4천km 항해로 실제 작전 운용을 입증하는 등 향후 사업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요소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지난해 폴란드 잠수함 수주 실패 때와 같은 전략 부재나 실책도 크게 눈에 띄진 않았다. 당시 폴란드의 작전 해역인 발트해가 평균 수심 55m에 불과한 얕은 바다라는 점을 간과하고 '고객'의 니즈(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공급자 중심 사고가 패착이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물론 이번에도 독일의 막판 납기 단축 승부수에 허를 찔린 측면은 있다. 독일은 노르웨이와 제휴해 노르웨이에 사전 배정된 잠수함을 캐나다에 양보하겠다는 제안으로 우리의 '빠른 납품' 장점을 상쇄했다. 212 CD 잠수함의 이름 자체가 독일과 노르웨이 공동설계(Common Design)라는 뜻이다.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 연합뉴스일각에선 캐나다가 원한 것은 단지 잠수함 자체가 아니라 북극해에서의 해군 공동작전이었는데 우리 측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 오류나 패착보다는 비(非) 나토 국가의 한계에 가깝다. 이번에 독일을 도운 노르웨이는 캐나다와 나토 회원국 및 북극권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이번 수주 실패는 나토와 유럽 방산 블록을 뚫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우리에게 안겨줬다. 캐나다 측은 이번 결정이 나토 동맹을 감안한 전략적 고려였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과 한계를 감안하면 기술력 승부 외에 돌파구가 없는 것이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이제 안보동맹 블록화와 자국 무기 우선주의는 방산시장의 상수가 됐다"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블록을 뛰어넘을 정도의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획기적인 현지화를 통해 시장 진입의 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단기적으로는 기술이전, 공동개발, 장기 군수지원 등 보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제안을 준비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세계 시장이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베스트셀러 잠수함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해군 출신 방산업체 임원은 "앞으로 안정적인 해외 수주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기반조차 축소될 수 있다"며 "최고의 성능, 최적의 비용, 적기 납품이라는 경쟁력을 모두 갖추고도 시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K-해양방산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