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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디언? 장난이잖아요"…학교 안 파고든 혐오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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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학생들 "노무현 관련 단어·'전라디언' 흔히 들어"
"표현의 자유"·"장난일 뿐"…혐오 표현 심각성 인식 부족
전문가 "온라인 혐오 콘텐츠 확산·쟁점교육 위축 영향"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정문 앞에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는 지난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고 외치며 '5·18 탱크데이' 논란을 연상시키는 구호를 외쳐 물의를 빚었다. 류영주 기자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정문 앞에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는 지난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고 외치며 '5·18 탱크데이' 논란을 연상시키는 구호를 외쳐 물의를 빚었다. 류영주 기자
"저희보다 어린 애들이 더 많이 써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된 단어나 최근엔 '탱크데이' 얘기도 해요."

지난 6일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고등학교 1학년 A(16)군은 초등학생과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 용어나 각종 혐오 표현이 장난처럼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야구부의 5·18민주화운동 조롱 구호 논란 역시 이 같은 혐오 표현 문화가 청소년 사이에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냥 장난", "표현의 자유"…일상이 된 혐오 표현

강동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B(18)양은 "어떤 친구들이 전라도를 좀 비하하면서 '전라디언'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며 "그런 말에도 다들 웃어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혐오 표현을 지적하면 오히려 눈총을 받거나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게 B양의 설명이다.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A군은 "(혐오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또 표현의 자유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 안 쓰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혐오 표현을 악의가 아닌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인식도 많았다.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신모(18)군은 "주변 친구들이 (혐오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냥 장난이다"라며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박모(16)군도 "전에 어떤 친구가 일베 용어를 사용해서 선생님이 지적한 적이 있다"며 "그런 애들은 다 장난으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2~6일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혐오·역사 왜곡 표현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 응답자의 89.3%에 달했다.

혐오 표현 유형으로는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 조롱'이 88.9%로 가장 많았다. 전교조는 이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혐오와 차별'(86.8%),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순으로 나타났다.

SNS·교권 붕괴 등이 원인…혐오, 국가적 대응해야

아이들이 비하·조롱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극우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혐오 표현이 SNS를 통해 확산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A군은 "인스타그램에서 (혐오 표현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박군도 "실제로 일베 같은 커뮤니티 보다는 SNS를 통해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교조 조사 결과, 교사들은 배재고 사태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복수응답)으로 '온라인 혐오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94.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정치권·언론의 혐오와 조롱의 언어'(74.4%),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민원 부담으로 인한 쟁점 교육 위축'(62.0%) 순이었다.

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를 한 가운데 이효준 배제고 교장이 사과의 말을 전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박종민 기자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를 한 가운데 이효준 배제고 교장이 사과의 말을 전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박종민 기자
배재고는 지난 6일 광주일고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함께 참배했다.

같은 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현재 정당한 교육활동과 최소한의 생활지도마저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의 표적이 되는 처참한 교권 붕괴 상황 속에서는 학생들의 비하·조롱 등의 언어적 문제에 대한 생활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자녀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를 배울 수 있도록 학부모가 가장 먼저 책임감을 갖고 지도하며 학교의 교육적 지도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혐오 표현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정부와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교조는 지난 7일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플랫폼 기업 등이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쟁점교육 보호, 민주시민·인권·역사교육 및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 강화 등을 촉구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는 "학생들이 의도 없이 혐오·차별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해악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교사들의 주장대로 정치적 중립을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사가 역사 왜곡이나 혐오 표현 등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 논란이나 민원 때문에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홍 교수는 그러면서 "2010년대부터 혐오와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 있었는데 관련된 법을 제정하거나 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며 "이 상황에서 아이들 탓을 할 수는 없으며, 혐오와 차별 문제를 오래 방치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해결의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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