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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차례 거부'만으로는 부족한가…헌재 오른 유사강간죄 판단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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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차례 거부에도 1·2심 무죄 확정된 유사강간 사건
재판소원 시행 후 성범죄 첫 본안 심리
재판소원 청구인 인터뷰…"어디까지 거부해야 하나"
'최협의설'·성적 자기결정권 헌법적 판단 주목

연합뉴스연합뉴스
"재판소원이 없었으면 저는 이 여정을 이어가지 못했을 거예요. 평생 의문과 분노, 고통을 가지고 살았겠죠."
 
재판은 끝났지만 의문은 끝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75차례 넘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피고인에게 묵살당하고, 처벌을 호소했지만 법원으로부터 '피고인 무죄' 판결을 들어야 했던 유사강간 사건의 당사자 A씨의 이야기다.
 
A씨에게 남은 의문은 '하지 말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왜 법은 이를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다. 검사마저 상고를 포기한 사건에서 A씨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헌법재판소였다. 법원의 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재판소원은 지난달 본안 심리에 회부됐다. 지난 3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이후 성범죄 사건이 본안에 오른 첫 사례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A씨는 "하지 말라고 한 행위가 법적으로는 끝내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재판소원을 하면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75차례 거부에도 무죄…법원이 본 유사강간의 기준

A씨와 피고인은 약 10년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 A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오랜 지인이었지만 단둘이 만난 것은 사건 당일이 처음이었다. 당시 A씨는 휴대전화에 남성인 피고인의 연락처를 '언니'로 저장해 두고 있을 정도로 '친한 지인'으로 여겼다고 했다.
 
검찰은 당시 피고인이 A씨의 의사에 반해 신체 일부를 삽입했다며 유사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약 67분 분량의 녹음파일도 핵심 증거로 제출됐다.
 
녹음파일에는 A씨가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75차례 이상 거부 의사를 밝히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욕설을 하고 피고인을 밀치거나 때리는 소리, 피고인이 맞은 사실을 언급하는 발언 등이 담겼다.
 
A씨는 "성적 행위를 원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적이 없었다"며 "말과 행동으로 계속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법원은 이를 다르게 판단했다"고 말했다.
 
A씨 측은 녹음파일 어디에도 성적 행위에 동의하는 취지의 표현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사건 당시 A씨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으며, 이러한 사정이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A씨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사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가 있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더해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까지 증명돼야 한다는 취지다.
 
항소심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과 녹음파일 등을 직접 증거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종합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유사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얼마나 저항해야 했나'…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판결

    A씨는 사건 당시 저항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욕설을 하고 몸으로 밀치거나 뺨을 때리는 등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이 A씨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판결문에는 A씨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유사강간 행위를 할 때) 피고인에게 그만하라고 하거나 욕설을 하면서 뺨을 때리기도 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중략) 피고인에게 아프다거나 그만하라고 말하기만 했을 뿐 피고인에게 물리적인 저항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는 이 같은 판단이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항하지 않았다면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했을 것이고, 실제로 저항했더니 그 정도로 싸울 수 있었다면 저항이 곤란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처럼 느껴졌다"며 "어떻게 행동했어도 결국 제 행동이 저에게 불리한 이유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의 대리인인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치유)도 현행 판례가 성범죄 피해자의 대응 방식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현재 법리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나 그 정도가 아니라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들 정도였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지, 사건 전후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까지 심리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항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저항한 사람에게는 저항할 힘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며 "결국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재판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판례는 강간죄나 유사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더라도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처벌의 핵심 기준으로 본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법리 해석을 이른바 '최협의설'이라고 부른다. A씨는 이러한 최협의설이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헌재가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A씨 측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보정서(2026.06.11 제출)
결국 최협의설의 기준을 따르자면, 법원은 아래와 같이 행위규범을 제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간음 내지 유사성행위를 하려 할 때 '상대방이 하지 말라는 말을 해도, 그건 법적으로 의미 있는 거부가 아니니 무시하고 상대방이 몸부림을 칠 때도 그냥 몸부림을 치는 것만으로는 저항이 아니며, 과거 상대가 거부한 적이 있다면 더 세게 몸부림을 쳐야만 저항으로 인정받으니 일단 성적 행위로 나아가도 된다'.
A씨는 판결문에 기재된 일부 사실관계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사건 이전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A씨는 피고인과 합의된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절차는 사실상 모두 끝난 듯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상고할 수 있는 주체는 검사뿐이다. A씨가 직접 대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끝난 줄 알았던 재판…마지막으로 택한 '재판소원'

그러던 중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가 마지막 가능성으로 떠올랐다.
 
A씨는 "1심과 2심을 거치는 동안에도 언젠가는 제 이야기를 법원이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이 상고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결과만은 아니다. 그는 현재의 법리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재판소원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저도 알 수 없다"며 "'하지 말라'는 말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지금의 기준이 정말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지 한 번쯤은 다시 논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저 혼자만 이상한 줄 알았다. 그런데 재판소원을 하면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 싸움은 이제 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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