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자조금협회 제공미국·유럽산 우유의 무관세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산 멸균우유가 국내 우유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길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에서 소비자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최근 환율과 물류비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수입가도 흔들리는 만큼 단순히 '값싼 우유'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우유 자급률은 한때 60%대를 유지했지만 현재 40%대 중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수입산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사이 국내 원유 생산량은 계속 줄고 있어, 국산 낙농 기반이 흔들리면서 '식량안보'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당할 생산 기반 자체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쟁이 일깨운 식량안보…'싸게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
최근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세계적인 곡물 생산·수출국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밀을 비롯한 주요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현재 1%대에 머물고 있다. 국민 식생활에서 밀의 비중은 높지만 국내 생산량은 소비량에 크게 미치지 못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한 번 낮아진 자급률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밀가루 등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며 국내 식품·외식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도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리 땅에서 이를 뒷받침할 국내 생산 기반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산 생산 기반 무너지면 복구 불가…'가격 안전지대' 사라진다
우유 역시 마찬가지다. 젖소를 사육하고 원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가와 목장, 사료 및 종축, 유통·가공시설 등 장기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공장을 증설하듯 단기간에 원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진다면, 향후 국제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했을 때 수입만으로 부족분을 빠르게 메우기가 어렵다.
또한 수입산 멸균우유가 항상 국산보다 저렴할 것이라는 전제 역시 장기적으로는 불확실하다. 환율과 국제 원유 가격, 해상운임 및 물류비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수입 제품 가격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해외선 농축산업이 '안보 인프라'… 국내 생산 기반 지켜야
해외에서도 최근 농업과 축산업을 단순한 산업적 관점에서 벗어나 식량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국내 농축산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식량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민에게 필요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평상시부터 생산자와 생산시설, 관련 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소한 우유처럼 국내 생산이 가능한 기초 식품의 기반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우유 자급률이 무너지면 빵과 커피도 안전하지 않다
우유 자급률 하락이 우려되는 이유는 단순히 마시는 우유의 공급 문제가 아니다. 우유는 제빵·제과부터 아이스크림, 치즈, 버터 등 유제품은 물론 카페와 외식업계의 다양한 메뉴에 활용되는 대표적인 기초 식품이다.
국내 원유 생산 기반이 축소되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면 그 영향은 우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식품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국산 우유의 경쟁력을 단순히 수입산과의 가격 비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는 선택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을 유지하는 문제는 별개인 만큼, 국산 우유가 수입산과 가격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국내 낙농가가 지속적으로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승호 우유자조금관리위원장은 "식량 자급률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기준"이라며 "대한민국 우유 자급률이 45% 수준까지 낮아진 상황에서 값싼 수입 우유의 확대만을 바라보기보다 국내 낙농 생산 기반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을 위해서는 산업 차원의 대책과 함께 소비자들도 신선한 국산 원유의 가치와 국내 낙농 기반의 중요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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