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제공저출생은 정말 개인의 선택일까.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한국의 초저출생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을 사회가 사실상 선별해온 결과로 읽는다.
이 책은 합계출산율 0.72라는 숫자 아래 놓인 불평등한 구조를 추적한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700조 원이 넘는 저출생 예산이 투입됐지만 출산율 반등에 실패한 이유를, 정부 정책이 '누가 부모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책의 핵심 개념은 '구조적 우생학'이다. 과거 우생학처럼 특정 집단의 출산을 직접 금지하거나 강제하지는 않지만, 안정된 소득과 고용, 주거, 돌봄 자원을 갖춘 이성애 부부만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제도와 시장, 사회적 기대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출산이 형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점점 '위험한 선택'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득 격차, 성차별, 장시간 노동, 사교육 경쟁, 주거 불안이 겹치면서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출산의 선택지에서 먼저 밀려난다는 것이다.
정상가족 중심의 제도도 주요 비판 대상이다. 저자는 결혼과 혈연, 이성애 가족을 기준으로 한 정책이 미혼모와 한부모, 동성 커플, 다양한 생활공동체의 재생산권을 제약한다고 본다. 국가가 출산을 장려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상 부모'의 범위를 좁게 유지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책은 대안으로 성평등 강화, 돌봄권 보장,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정책, 기본소득, 정상가족 중심 제도의 해체 등을 제시한다. 출산을 장려금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주희 지음 | 은행나무
웨일북 제공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병원과 복지 제도를 알아보고, 식단과 일정을 맞추는 일. 가족의 삶은 누군가가 먼저 생각하고 조정하는 노동 위에서 굴러가지만, 그 일에는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이름이 없었다.
김희경의 신간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다룬다. 스테디셀러 '이상한 정상가족', '에이징 솔로'를 쓴 저자는 이번 책에서 저출생, 돌봄 공백,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밑에 놓인 '기획 노동'에 주목한다.
기획 노동은 단순히 손으로 수행하는 집안일이나 돌봄과 다르다. 냉장고 속 재료를 확인하고, 가족의 식성을 고려해 식단을 짜고, 아이의 학원과 병원 일정을 조율하고, 부모에게 필요한 제도와 서비스를 찾아보는 일이다.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 생각하고 판단하고 배치하는 정신적 노동이다.
저자는 맞벌이 부부, 부모 돌봄을 맡게 된 자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돌봄을 받으며 자기 삶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장애 당사자 등 21명을 만났다. 이들의 상황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돌봄이 있는 곳에는 늘 누군가의 기획 노동이 있었고, 그 노동은 사랑과 책임이라는 말 아래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책은 특히 이 일이 왜 여성에게 집중되는지를 묻는다. 직장에서는 기획 능력이 전문성으로 평가되지만, 가족 안에서의 기획 노동은 '엄마니까', '딸이니까', '아내니까' 해야 하는 일로 밀려난다. 돌봄이 길어질수록 여성은 일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거나 경력을 포기하는 상황에 놓인다.
부모 돌봄과 장애아 양육을 다룬 대목에서는 돌봄이 갑자기 시작되지만 책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어떤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위험을 대비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가족의 '관제탑'이 된다.
김희경 지음 | 웨일북
웅진지식하우스 제공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수박 농사를 짓던 청년은 서른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흔둘에 농사를 접고 러시아로 떠났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물리학과 항공우주공학을 붙들고 버틴 끝에, 쉰둘의 나이에 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근식 박사의 에세이 '몫이 있는 사람'은 TV 예능 출연 이후 '만학도의 전설'로 알려진 저자가 수박 농사꾼에서 우주공학자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직접 풀어낸 책이다.
공 박사는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았다. 당도 높은 수박을 키우는 농부로 이름을 알렸고, 재배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안정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었다.
삶의 방향을 바꾼 계기는 2002년 태풍 루사였다. 어머니가 평생 일군 땅과 10만 평에 이르는 수박밭이 하루아침에 흙탕물에 잠겼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끝내 놓지 못한 것이 공부였음을 깨닫는다.
책은 극적인 성공담처럼 보이는 인생을 차분히 되짚는다. 야학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시간, 두 동생의 대학 공부를 뒷바라지한 뒤 뒤늦게 자신의 길을 택한 과정, 마흔둘에 러시아 유학길에 오른 결심이 이어진다.
러시아에서의 시간은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언어의 장벽, 낯선 강의실, 퇴학 위기, 밤샘 공부가 이어졌다. 컴퓨터를 배우는 일조차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몸이 버티지 못해 치통과 잇몸 통증에 시달렸고, 그 시절의 흔적으로 지금도 틀니를 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모스크바 물리기술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마침내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책은 그 결과보다 그 시간을 만든 하루하루에 초점을 맞춘다. 늦게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돌아갔지만 끝내 도착한 사람의 기록이다.
공근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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