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보도된 매일신보. 국립중앙도서관 제공민족문제연구소가 배우 하영(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를 둘러싼 친일 논란과 관련해 "친일 행위가 명백하다"며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다만, 연구소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은 행위 당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선대의 과오에 대한 단죄를 후손에게 전가하는 연좌제적 발상은 민주 사회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짚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안상호는 대한제국 관립일어학교와 도쿄 자혜의원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전문직 의사였지만, 화려한 이력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친일·부일 협력 행적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안상호의 친일 행위에 대한 근거로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 준비 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을 꼽았다.
또,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경성부 협의회원(1914, 1918, 1920, 관선 임명직)을 역임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1922~1927), 경성신사의 씨자총대(신도 대표, 1915),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1916), 반일운동 배척을 표방한 동민회 회원(1924) 및 평의원(1925~1927) 등 친일 단체에 활동했다고 밝혔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체 모범사례'로 소개된 기록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당시 안상호가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기록도 있다며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했다고 분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2009년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놓인 '친일인명사전'. 연합뉴스'특정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행위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연구소는 "대정친목회는 고문 이완용·민영휘, 회장 조중응 등 거물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전직 관료·귀족·대지주·실업가들이 결집하여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결성한 단체"라며 "당시 조선인 단체로는 종교단체를 제외하면 대정친목회가 거의 유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인의 단체 결성과 결사 활동이 극도로 억압되던 1910년대 무단통치 하에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1930년 전시체제기에 반강제적으로 조직된 전쟁협력단체와는 결성 배경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 엘리트의 모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아가 3·1운동 전후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민족분열책)를 획책할 당시, 대정친목회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하는 정신적·사회적 협력기구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3·1운동을 반대하고 일제 통치에 순응하면서 '독립불능론'을 주장하는 한편, 산업의 발달과 문화 향상을 내세우는 개량주의적 '실력양성론'을 펼쳤다"며 "안상호는 평의원(일종의 대의원 격)으로 참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라고 강조했다.
안상호가 총 4389명이 수록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연구소는 "핵심 기준은 친일행위의 자발성·반복성·지속성과, 식민통치기구 내 특정 지위(귀족, 중추원, 고등관, 경찰간부, 군 장교, 친일단체 간부급) 여부였다"며 "2009년 발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로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선정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편찬위원회의 결정으로 수록을 보류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곧 '친일 행적이 없음'을 뜻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해방 6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사전 편찬 작업은 당시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와 사료의 한계 속에서 진행돼 판단이 보류된 인물도 다수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과거사 기록 사업은 완료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료의 발굴과 검증을 통해 '보유편'과 '개정증보판'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학술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연구소는 하영 개인에 대한 연좌제적 비난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구조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여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상의 과오를 성찰 없이 미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소비한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식민지배 하에서 형성된 전문직 계보와 사회적 자산이 해방 후 청산 없이 어떻게 기득권으로 승계되고 세습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과 역사적 성찰로 이어져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참교육'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하영은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째 의료인의 길을 이어온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증조부가 안상호로 확인되면서 여론은 반전을 맞았다.
논란이 일자 하영은 "그동안 저는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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