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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에어컨 있어도 일 접었는데"…계절노동자가 쉴 그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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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쉼터없는 호박밭, 실종 28시간 만에 발견
1시간 지켜봐도 인적 없어…"쓰러져도 잘 몰라"
인근 공장 "우리도 오후엔 쉬는데"…밭에선 계속 노동
담당 공무원 3~4명서 1900명 계절노동자 관리

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
"그때는 말도 안되게 더웠죠.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우리도 오후엔 일을 접었는데."

지난 20일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공장 관계자는 2주 전 폭염을 떠올리며 근무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 1㎞도 떨어져 있지 않은 호박밭에서는 지난 7일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더위를 피하러 사라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일을 시작한 지 불과 이틀 차였다.

전국 계절노동자 수가 2022년 1만7천명에서 올해 10만 5천명으로 4년 새 6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체계는 아직 뒤쳐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곳엔 그늘도, 사람도 없었다

지난 7일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농지. A씨는 이곳에서 200m 떨어진 호박밭에서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연속 7시간 진행했다. 김수진 기자지난 7일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농지. A씨는 이곳에서 200m 떨어진 호박밭에서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연속 7시간 진행했다. 김수진 기자
A씨가 사망 직전 더위를 호소했던 지난 7일, 여주지역 낮 최고기온은 37.6도까지 치솟으며 폭염 중대경보가 내려졌다. A씨는 한낮에 휴식을 요청하고 숙소로 향했지만 그대로 실종됐다.

이튿날 A씨가 발견된 장소는 작업장에서 200m 떨어진, 창고 건물 인근 농지였다. 경찰은 A씨가 특별한 지병이 없었다는 유족의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시신 부검 1차 구두 소견 등을 토대로 온열질환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실제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아간 호박밭은 한 눈에 담기지 않을 만큼 넓었다. 이곳에서 사람이 수작업을 하는 건 불가능해보일 정도였다.

반면 반경 수백 미터 내에 햇볕을 피할 지붕이나 그늘은 없었다. 1시간 동안 머무는 동안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다.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마치 황폐한 사막 같기도 했다.

인근 공장 관계자는 "가끔씩 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봤는데 일찍 퇴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농림부·지자체로 권한 분산…책임 어디에

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
A씨는 지난 5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그날 곧장 여주시청에서 3시간가량 생활적응 교육을 받았다. 다음날인 6일 새벽부터는 곧바로 밭일에 투입됐다. 기후에 적응할 틈도 없이 입국 이틀 만에 폭염 노동 한복판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노동자의 폭염 안전을 전담하는 곳은 없는 상황이다. 계절노동자는 농번기 등 일손이 몰리는 시기에 단기로 입국해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로, 통상 E-8(계절근로) 비자를 받아 최대 8개월까지 체류한다.

비자 발급과 관리·감독 권한은 법무부에 있지만, 실제 도입과 인력 배정·현장 관리는 여주시같은 지방정부 몫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장주 교육과 폭염 캠페인, 안전수칙 안내 등 실무를 함께 맡고 있다.

노동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나 농업과 관련된 농림축산식품부는 계절노동자 기본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E-9) 근로자는 사업장을 전수 파악해 산업안전교육까지 필수로 진행하지만, 계절노동자는 관리 권한이 지방정부와 법무부, 농림부에 있어 이들이 어디서 일하는지조차 우리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자 종류가 달라 노동자 정보와 사업장 현황을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무부 등에 수차례 공유를 요청해왔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만 정보에서 소외된 게 아니다. 농림부도 계절노동자 전체 명단이나 사업장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모두 계절노동자의 온열질환 추정 사망·사고 통계 등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폭염 관리는 '교육' 뿐…점검도 집계도 안돼

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농가로 가는 길. 도보 이동이 불가능한 농로. 김수진 기자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농가로 가는 길. 도보 이동이 불가능한 농로. 김수진 기자
관리 주체와 권한이 분산돼 있다 보니 실제 관리하는 방식은 주먹구구로 이뤄진다.

A씨를 현장에 배정한 여주시의 경우, 계절노동자에게 폭염 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실제 휴식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는지는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처럼 휴식 공간이 없는 노동자는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인력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여주시 계절노동자 관리 인력은 3~4명인 반면, 담당하는 계절노동자는 1900명에 달한다.

일부 시군은 담당자가 단 1명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더 열악한 상황이다.

관계 당국이 농장주를 상대로 법규 위반 시 처벌 여부를 안내하고 있지만, 실제 위반이 확인돼도 처벌 권한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계절노동자를 고용한 소규모 농가가 처벌받은 사례도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폭염 등으로 재해 발생 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 가능성을 농장주에게 안내하고 있다"면서도 "위반이 확인돼도 지자체나 우리가 처벌할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여주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 안전시설과 점검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형식적 온열질환 교육…이마저도 생략 가능성"

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지난 7일 더위로 인한 휴식을 요청한 뒤 실종됐다 숨진채 발견된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 A(38)씨가 근무한 경기 여주시 마래리의 한 호박밭. 김수진 기자
전문가들은 형식적인 온열질환 예방 교육이 아닌 실질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이천여주양평지부 관계자는 "입국 당일 일정만 봐도 신체검사와 행정절차에 4~5시간이 걸려 노동안전교육이 들어갈 시간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며 "형식적인 교육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고, 사후 점검도 사실상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국인 사업장은 노동조합을 통해 부당한 근로환경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농가 계절노동자에게는 이런 최소한의 보호장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의 최정규 변호사는 "폭염 지침을 어겨 사업장이 페널티를 받은 사례는 전혀 본 적이 없다"며 "노동부도 관리감독할 의지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받은 3시간짜리 교육은 너무 형식적인 교육"이라며 "인력이 필요해서 데려온 거라면, 그 사람이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게 계절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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