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최영주 기자※스포일러 주의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는데…. 외계인한테 물려가고(?), 하늘만치 큰 외계 함선이 무너져도 솟아날 희망은 있을까?
인간보다 훨씬 크고 센 외계인이 오토바이를 던지고, 차를 볼링공 굴리듯이 굴리면서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때려 부순다. 심지어 총을 쏴도 죽지도 않고, 다시 일어나 나를 쫓아온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공격했는데, 이제는 내가 가해자라고 하네? 그러나 이젠 수습 불가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
남은 건 계속된 폭력의 질주뿐인데, 갑자기 하늘이, 아니 하늘에서 함선이 추락하며 산을 통째로 박살 낸다. 나도, 외계인도 절망뿐인 상황에서 일단 나도, 외계인도 달린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희망'은 존재하는 걸까?
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머릿속의 '이 장면'
Y3 : 각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난 '네이팜탄 소녀'와 닮은 아이로 추정되는 인물이 도망가는 모습. 어쩌면 '호프' 속 폭력이 현 세계의 전쟁에 대한 메타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H : '무자비한 파괴의 주체'를 둘러싼 혼돈상이 인상적이었다.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 실체를 두고 '막무가내 믿음'이 번지는가 하면("해술 아저씨가 그랬다 하면 그런 거야."), 오히려 덮어놓고 믿지 않는 경향(양배 주장에 대한 고범석의 폄하 등)이 교차. 갑작스러운 혼돈을 두고 나타나는 인간의 습성을 함께 보여주는 듯한데, '진실'과 '믿음'에 대한 나홍진 감독의 고민이 이어지는 듯하다.
Y2 : 보건소장(황석정)의 광기 어린 전기 톱질. 이미 죽은 괴수, 즉 외계인의 시체를 해부하는 장면인데 음습한 축사에서 관객이 외계인의 시점에서 보건소장의 피 튀기는 톱질을 만끽하게 한다. 이미 생을 마감한 '망자'이지만 정체불명의 낯선 존재를 향한 인간의 폭력은 거침이 없다. 같은 종을 대할 때 갖추고 있었던 소위 인간다운 문명의 껍데기를 너무도 쉽게 벗어던진다. 영화 안에선 '외계인'이지만 그것은 '외지인' '이방인' 등 누구든 될 수 있다.
영화 '호프' 예고편 화면 캡처 Y1 : 범석이 다리 한쪽이 잘린 채 혼비백산 도망치는 괴물을 바라보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뚝 떨어진 괴생명체. 사람들은 그가 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무자비하게 인간들을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반대로 괴물 역시 (동족인) 아이가 왜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살해당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외계인은 맥락 없이 우리를 죽이는 살인마가 되고, 외계인에게 인간은 이유 없이 (동족인) 아이를 죽인 존재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셈인데, 그 순간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무척 측은하게 느껴졌다.
Y3 : 다들 폭력과 믿음,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차하고 결합하는 순간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은 한 것 같다. 사실 실체를 모르는데도 일단 총을 쏘아댔고, 그 폭력의 결과가 폭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화 속 마을에서 '간첩'과 관련된 문구도 종종 보였다.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이 사실(실체)이 되고, 악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되며, 폭력을 위한 폭력이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호프'를 보며 '실체 없는 폭력은 왜 무서울까?'란 질문이 떠올랐다.
H : 실체를 마주하고 경험해 본다면, 예측가능한 패턴들이 나올 수 있고, 이를 통해 위험을 회피하거나 위험 대상을 제거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실체 없이 폭력이 이뤄진다면 그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기에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최영주 기자 Y2 : 정말 물리적 폭력의 충격은 잠깐이지만 실체 없는 폭력은 그 후유증을 깊게 남기는 것 같다. 그날의 '조온습'(조명온도습도)을 몸이 기억한다고 해야 하나?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거다. 실체 없는 폭력은 보통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나 구조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움직이고픈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좌절되는 순간 무기력의 공포에 잠식당할 수도 있다.
Y1 : 다들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 '믿음'은 실체가 없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어떤 폭력은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 않아도 아프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몰라 더 무섭다.
영화 '호프' 해외 포스터 일부. IMDb 캡처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솟아날 '희망'은 있다?
Y3 : 그런데 만약 내가 '호프' 속 호포항 주민이라면,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외계인')을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자. 각자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 솔직히 우리는 얼마나 우리와 다른 것, 이방인, '우리'라고 하는 영역 밖에 있는 '타인'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일단 누군가 '괴물'이라고 하고, 눈앞에 보이는 건 시체와 파괴된 마을뿐이라면 총부터 들지 않을까 싶긴 하다.
H : 난 기민하게 국내외에 상황 전파. 군경 출동 요청.
Y3 : 아…. H는 대문자 S인가 보다. 내가 대문자 N으로서 이방인, 타인 다 빼고 다시 대답해 본다면, 일단 '컨택트'나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소통을 시도해 본다는 게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대답일 테지만. 사실 '화성침공'이나 '우주전쟁'처럼 안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Y1 : 나는 총과 화염, 폭탄으로 저항해도 타격이 없는 괴물들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어디 땅굴이라도 파서 들어가 숨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 H가 군경 출동 요청하면 같이 땅굴 파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또 같이 들어가실 분?
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Y2 : Y1이랑 H가 같이 다니고, Y3는 나랑 같이 다니면 될 듯. 무차별한 살육이라면 도망치다 괜히 힘 빼지 말고 한 방에 죽임을 당해(?) 준다. 운이 좋을 경우, 나를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 있는 살육이라면 AI의 도움을 받아 바디랭귀지를 시도해 보고, 안 되면 역시 한 방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는 이미 눈에 띄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무기가 있다면 일단 임기응변으로 일대일 상황을 벗어나 시체 더미 속에 파묻혀 괴물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볼 거다. 너무 구질구질하긴 한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이다.
Y3 : 그런데 정말 저런 상황이 오면 절망적일 것 같다. 영화처럼 생전 처음 보는 '외계인'이 우리를 공격하고,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정도로 하늘에서 거대한 함선이 추락해 폭발하는 등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차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일단 시도는 해보지 않을까 싶다. 정말, 보이지 않는 것을 갈망하며 믿고 나아가는 마음이 희망인 듯싶다. 다들 희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H :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라면, 그 모두를 초월하는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질 듯.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옛사람들이 더욱 신을 찾으며 희망을 놓지 않았듯이 말이다. 희망이란 내 존재가 포기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Y1 : 사실 인간은 우주에서 먼지나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세상에 무수히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희망을 찾지는 않는다. 그냥 흘러가게 두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희망은 붙잡으려 할수록 빠져나가고, 기대할수록 실망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래도 어딘가에는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가야지.
Y2 : 함선이 추락한다? 두렵고 무섭지만, 도파민이 미친 듯이 터질 것 같다. 불과 어제까지의 나는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끝에 끝까지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끝난 순간에는 내가 굳이 버릴 새도 없이 종결된다. 희망이라는 건 언제든 생겨나고 가질 수 있지만 사라지는 순간에는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것 같다.
영화 '호프' 예고편 화면 캡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Y3 : 훈훈한 마무리인 듯. 마지막으로 '호프' 별점('5점' 만점)과 한 줄 평을 해보자. 난
'3.5점'에
"믿음을 놓지 않을 테니 희망을 주세요."(주어 생략) H의 답변이 제일 궁금하다.
H : '2점'.
"고루 섞이지 않은 비빔밥 장르에, 고추장이라도 조금 더 넣을걸." Y2 : '3.5점'.
"나홍진의 서스펜스가 SF를 만날 때, 보이지 않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Y1 : '2.5점'.
"그래서 '호프' 2편은 언제 개봉하나요?" [쪼중만의 공포체험]은 (어떻게든)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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