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커 18장으로 허블 100장을 찍는다…로먼이 품은 두 개의 눈[코스모스토리]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발사①]

지난달 8월 30일(현지시간) 낸시그레이스로먼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모습. NASA/존 크라우스(John Kraus)지난달 8월 30일(현지시간) 낸시그레이스로먼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모습. NASA/존 크라우스(John Kraus)
▶ 글 싣는 순서
①크래커 18장으로 허블 100장을 찍는다…로먼이 품은 두 개의 눈[코스모스토리]
②우주는 95%가 유령이다…로먼은 그 그림자를 추적한다[코스모스토리]
③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던 소녀가 허블을 만들었고, 이제 자기 이름을 띄웠다[코스모스토리]
우주를 향한 인류의 질문에 30년 넘게 답을 돌려준 눈은 허블 우주망원경이었습니다. 그 계보를 잇는 차세대 거대 우주망원경 '낸시 그레이스 로먼'이 마침내 우주로 날아올랐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8시 26분(현지시간 오전 7시 26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로먼을 탑재한 스페이스X의 대형 로켓 팰컨헤비의 27개 엔진이 불을 뿜어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발사 당일 공식 블로그에서 500만 파운드의 추력으로 날아오른 로켓이 발사 31분 뒤인 오전 7시 57분(현지시간) 로먼을 분리했고, 그 직전 통신까지 확립됐다고 밝혔습니다.
로먼은 허블과 같은 선명함으로 비교할 수 없이 넓은 하늘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허블이 우주의 민낯을 처음 선명하게 보여주고 제임스웹이 더 깊은 과거를 열었다면, 로먼이 맡은 건 그 선명한 눈으로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스페이스X의 팔컨헤비 로켓에 탑재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스페이스X 엑스(X) 캡처스페이스X의 팔컨헤비 로켓에 탑재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스페이스X 엑스(X) 캡처
이번 발사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로먼의 공식 발사 준비 시한은 원래 2027년 5월이었는데, 이를 9개월이나 앞당겨 발사대에 선 겁니다. 거듭된 연기 끝에 목표보다 10년 넘게 늦게 떠난 제임스웹과 비교하면 우주개발 역사에서 보기 드문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로먼을 실어 나른 로켓의 31분은 어떠했을까요? 그 비행 기록부터 시작해, 이 기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봅니다.

이륙 31분, 로먼은 홀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로켓 발사는 계획대로 오차없이 깔끔하게 진행됐습니다. 우주매체 스페이스닷컴의 발사 당일 보도에 따르면 이륙 약 2분 30초에 양쪽 부스터 두 기가 먼저 분리됐고, 약 4분에는 중앙 코어의 엔진이 꺼지며 단 분리가, 그 15초 뒤에는 페어링 분리가 이어졌습니다. 로먼을 넘겨받은 2단은 지구 저궤도에서 숨을 고른 뒤 두 번째 연소로 라그랑주 전이궤도에 올라섰습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팔컨헤비 로켓이 이륙하는 모습(가운데), 양측에 달린 부스터가 케이프커내버럴의 착륙장 두 곳으로 착륙하는 모습. 스페이스X 엑스(X) 캡처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팔컨헤비 로켓이 이륙하는 모습(가운데), 양측에 달린 부스터가 케이프커내버럴의 착륙장 두 곳으로 착륙하는 모습. 스페이스X 엑스(X) 캡처
NASA의 중계 카메라 1대가 착륙장을 잘못 촬영해 부스터 1기만 착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NASA의 중계 카메라 1대가 착륙장을 잘못 촬영해 부스터 1기만 착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
떨어져 나간 부스터 두 기는 케이프커내버럴의 착륙장 두 곳으로 되돌아와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NASA에 따르면 한 기는 이번이 첫 비행, 다른 한 기는 기상위성 GOES-U 등을 띄웠던 세 번째 비행이었는데, 생중계 화면이 한 기의 착륙만 담는 바람에 나머지 한 기는 화면 밖에서 조용히 임무를 마쳤습니다.
중앙 코어 부스터는 처음부터 돌아올 계획이 없었습니다. 우주개발 전문매체 NASA스페이스플라이트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발사 예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비행은 팰컨헤비의 통산 13번째 비행으로, 발사 시 1만150kg에 이르는 로먼의 무게와 150만km 밖이라는 목적지 때문에 중앙 코어의 연료를 남김없이 쓰고 버리는 구성이 선택됐습니다.

관광버스 크기, 티라노사우루스 무게

NASA가 발사에 맞춰 낸 공식 설명자료 프레스킷에 따르면 로먼은 모든 부품을 펼쳤을 때 길이 12.7m, 폭 4.4m로 관광버스만 한 크기입니다. 연료를 뺀 무게는 약 8000kg인데, NASA는 이를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의 몸무게에 비유했습니다.
등에는 가로 2m, 세로 3m짜리 태양전지판 여섯 장이 달려 있습니다. 태양전지 3902개가 총 4kW의 전력을 만드는데 가정용 옥상 태양광 수준의 발전량입니다. 이 판들은 전력 생산과 차양이라는 두 역할을 겸해, 로먼은 판을 태양 쪽으로 펼쳐 등진 채 그늘 속에서 우주를 바라봅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설명도. NASA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설명도. NASA
몸속에는 전선 3만 2천 가닥과 커넥터 900개가 신경계처럼 깔려 있습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이 배선을 전부 이으면 72km, 에베레스트산 여덟 배 높이에 이릅니다. 이렇게 만드는 데 개발부터 발사, 운영까지 들어가는 돈은 약 43억 달러입니다.
망원경의 심장인 주경은 지름 2.4m로 허블과 같습니다. 다른 점은 무게입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기술 발전 덕에 로먼의 주경은 186kg으로 허블 주경의 4분의 1도 되지 않으며, 뉴욕 로체스터의 방산업체 L3해리스가 설계하고 제작했습니다.

크래커 18장으로 만든 3억 화소

지난 2021년 NASA 고다드 스페이스센터에서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의 광시야기기(Wide Field Instrument, WFI)가 조립되는 모습. NASA/크리스 건(Chris Gunn)지난 2021년 NASA 고다드 스페이스센터에서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의 광시야기기(Wide Field Instrument, WFI)가 조립되는 모습. NASA/크리스 건(Chris Gunn)
광시야기기의 모자이크 플레이트. NASA/크리스건(Chris Gunn)광시야기기의 모자이크 플레이트. NASA/크리스건(Chris Gunn)
거울이 모은 빛은 로먼의 두 눈, 광시야기기(Wide Field Instrument, WFI)와 코로나그래프로 나뉘어 들어갑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주인공 격인 WFI는 소금 크래커만 한 적외선 검출기 18개를 이어 붙인 3억 화소 카메라로, 검출기 하나에 약 1680만개씩 박힌 수은-카드뮴-텔루라이드 광다이오드가 픽셀 하나씩을 맡습니다. 검출기를 전자기판에 붙이는 데는 껌처럼 무른 금속 인듐이 쓰였습니다.
검출기 18개는 일렬이 아니라 아치 모양으로 배열돼 있습니다. 로먼의 광학계는 초점이 화면 중심이 아니라 중심 둘레의 고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맺히도록 설계됐고, 검출기들이 그 고리를 따라 앉아 있는 겁니다. 프레스킷은 이 설계 덕에 넓은 면적을 똑같이 선명하게 찍으면서 두 관측기기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의 은하를 광시야 카메라로 관측할때 허블 우주망원경과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관측 범위 비교. 녹색이 허블이고 파란색이 로먼이다. 432번 관측해야 하는 허블 대비 로먼은 2번이면 된다. NASA 고다드 우주센터/JPL-Caltech하나의 은하를 광시야 카메라로 관측할때 허블 우주망원경과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관측 범위 비교. 녹색이 허블이고 파란색이 로먼이다. 432번 관측해야 하는 허블 대비 로먼은 2번이면 된다. NASA 고다드 우주센터/JPL-Caltech
NASA는 로먼 사진 한 장에 허블 사진 100장 분량의 디테일이 담긴다고 설명합니다. WFI는 허블과 같은 선명도로 100배 이상 넓은 하늘을 담아, 사진 한 장에 보름달 겉보기 크기보다 큰 하늘이 통째로 들어갑니다. 데이터 수집 속도는 허블의 최대 1000배에 이르고, 5년 기본임무 동안 쌓일 데이터만 2만 테라바이트에 달할 것으로 NASA는 내다봅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팔컨 헤비 로켓의 상단부에서 분리되는 모습. 기체의 후면에 설치된 지름 1.7m짜리 접시 안테나가 보인다.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팔컨 헤비 로켓의 상단부에서 분리되는 모습. 기체의 후면에 설치된 지름 1.7m짜리 접시 안테나가 보인다.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
이 데이터를 지구로 나르는 건 지름 1.7m짜리 접시 안테나입니다. 냉장고 높이만 하지만 탄소복합재로 만들어 무게는 10.9kg에 불과하고, 최대 초당 500메가비트의 속도로 전파를 쏩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로먼은 이 안테나로 매일 1.4테라바이트의 관측 자료를 미국 뉴멕시코와 호주, 일본의 지상국으로 내려보내는데, NASA 천체물리 임무 사상 최대 규모이자 NASA 고더드 인포그래픽 기준으로 허블이 보내는 양의 500배가 넘습니다.

별빛 지우개, 코로나그래프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핵심 장치 코로나그래프(Coronagraph)를 설치하는 모습. NASA/JPL-Caltech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핵심 장치 코로나그래프(Coronagraph)를 설치하는 모습. NASA/JPL-Caltech
두 번째 관측기기인 코로나그래프는 미래를 위한 기술 실증 장비입니다. 별빛을 가리는 마스크와 스스로 휘어지는 거울, 정밀 센서를 묶은 시스템으로, 별의 눈부심을 지우고 곁을 도는 행성이 반사한 희미한 빛을 직접 찍는 게 목표입니다. 프레스킷은 이를 두고 행성 직접 촬영을 위해 우주로 올라간 기술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라고 소개합니다.
핵심은 우주에서 처음 쓰이는 가변거울입니다. 코로나그래프를 제작한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 따르면 지름 5cm 거울 두 장 뒤에 2천 개가 넘는 미세 피스톤이 붙어 거울 표면을 실시간으로 구부리며, 마스크 틈새로 새어 드는 별빛까지 상쇄합니다. 연구진은 별 둘레에 빛이 지워진 어두운 관측 영역을 만드는 이 과정을 '다크홀 파기'라고 부릅니다.
코로나그래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이미지. NASA 고다드 유튜브 영상 캡처코로나그래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이미지. NASA 고다드 유튜브 영상 캡처
감도는 기존 관측 장비의 최대 1천 배입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코로나그래프는 그간의 직접 촬영이 주로 잡아낸 뜨겁고 젊은 슈퍼목성 대신, 더 늙고 차가우며 별에 가까운 궤도를 도는 거대 행성들을 노립니다. 계획된 시연 관측은 임무 첫 1년 반 사이 3개월간 진행됩니다.
이 실증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2040년대 지구형 행성을 사상 처음으로 직접 촬영하고 산소와 오존 같은 대기 성분에서 생명의 신호를 찾겠다는 NASA의 차기 대형 망원경 '거주가능세계 관측소' 구상으로 가는 징검다리이기 때문입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이 과학관측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NASA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이 과학관측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NASA
지름 2.4m 거울과 크래커만 한 검출기 18개, 스스로 휘어지는 거울까지 품은 이 기계는 지금 지구에서 150만km 떨어진 관측 명당, 태양-지구 라그랑주 L2 지점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우주를 향해 쌓여 온 인류의 질문들은 이제 이 새 눈 앞에 놓입니다. 첫 답장은 내년 초 공개될 첫 이미지와 함께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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