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넓은 세상'을 바라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식과 터전을 넓히는 '인류의 노력'을 바라봅니다.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 '코스모스토리' 시작합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이 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서 근무할 당시의 모습. NASA| ▶ 글 싣는 순서 |
①크래커 18장으로 허블 100장을 찍는다…로먼이 품은 두 개의 눈[코스모스토리] ②우주는 95%가 유령이다…로먼은 그 그림자를 추적한다[코스모스토리] ③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던 소녀가 허블을 만들었고, 자기 이름을 띄웠다[코스모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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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우주로 떠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주력 우주망원경에는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름의 주인은 NASA의 초대 수석 천문학자 낸시 그레이스 로먼입니다. 한 천문학자의 이름은 어떻게 인류의 차세대 눈에까지 오르게 됐을까요?
"여자는 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던 시절의 개척자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태어난 낸시 그레이스 로먼은 "여자는 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평생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고 미국대학여성협회(AAUW)는 전합니다. 유럽우주국(ESA)의 허블 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이런 시선 속에서도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미 천문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난 1965년 워싱턴 D.C에서 낸시 그레이스 로만(오른쪽)이 애드윈 버즈 올드린에게 천체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올드린은 이후 두번째로 달을 밟은 사람이 됐습니다. NASA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로먼은 1949년 시카고대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여성이 대학에서 종신직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해 해군연구소에서 전파천문학을 연구했습니다. 이후 1959년 갓 출범한 NASA에 합류해 초대 수석 천문학자이자 첫 여성 임원이 됐습니다.
로먼은 1960년대 중반 천문학자와 공학자들을 불러 모아 우주망원경 구상을 다듬었고, NASA와 의회를 설득해 1977년 허블 우주망원경의 예산 승인을 이끌어냈습니다. 허블 수석과학자를 지낸 에드 와일러는 이런 그를 "허블 우주망원경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NASA는 소개합니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의 허블 우주망원경 모형 옆에 서 있는 '허블의 어머니' 낸시 그레이스 로먼. NASANASA가 발사에 맞춰 낸 공식 설명자료에는 그의 역할이 사실 그보다 컸다고 설명합니다. 허블과 찬드라 X선 관측선, 콤프턴 감마선 관측선,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이어진 NASA '대관측선' 프로그램 전체의 추진력이 로먼 박사였고, 관측 데이터를 과학계에 널리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앞장서 주창한 이도 그였다는 겁니다. 로먼 박사는 2018년 12월 93세로 세상을 떠났고, NASA는 2020년 5월 개발 중이던 차세대 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스파이의 눈, 우주를 올려다보다
망원경 자체의 역사는 2010년 시작됐습니다. 미국 과학계가 10년마다 천문학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십년주기 조사'는 그해 광시야 적외선 서베이 망원경(Wide Field InfraRed Survey Telescope, WFIRST)을 차기 대형 우주망원경 1순위로 지목했습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주경. NASA/크리스 건(Chris Gunn)2년 뒤인 2012년 6월에는 뜻밖의 소식이 NASA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우주정책 전문지 스페이스폴리시온라인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정찰위성을 운용하는 미국 국가정찰국(NRO)이 쓰지 않고 보관해 온 허블급 2.4m 정찰 망원경 키홀(Key Hole) 두 대를 통째로 넘기겠다고 나선 겁니다. 당시 NASA 과학임무 책임자였던 존 그런스펠드는 우주매체 스페이스닷컴에 "느닷없이 찾아온 소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서류상 네 번 죽은 망원경
거울은 얻었지만 예산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뉴스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2월 발표한 2019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WFIRST의 전면 취소를 제안했고, 당시 예산안에는 "제임스웹 이후 또 다른 대형 우주망원경 개발은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NASA 케네디우주센터. NASA/프랭크 미쇼(Frank Michaux)과학계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과학매체 이오스(Eos)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프린스턴대의 우주론 학자 데이비드 스퍼겔은 "미국이 우주 천문학의 리더십을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의회가 예산을 복원해 망원경을 살렸고, 이듬해 또 취소안이 올라오자 다시 거부하며 5억 1070만 달러를 배정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의회의사당. 박지환 기자결말은 반전이었습니다. 천문학 전문지 스카이앤텔레스코프의 지난 1월 보도에 따르면 미국 의회가 확정한 지출 법안에서 로먼은 행정부 요청액의 두 배인 3억 달러를 배정받았습니다. 일정은 앞서가고 예산은 한도 아래로 지켜온 임무에 주어진 보상이라는 게 이 매체의 평가입니다.
수백만개의 부품, 1천 명의 손
로먼의 몸체는 미 메릴랜드주에 있는 NASA 고더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완성됐습니다. NASA에 따르면 1천 명이 넘는 기술자와 엔지니어가 수백만개의 부품을 다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여러 부분을 동시에 만들며 시험을 병행했습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망원경 설치 작업을 하는 NASA 과학자들. NASA/크리스 건(Chris Gunn)몸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각자 혹독한 검증을 치렀습니다. 망원경과 관측기기를 품은 안쪽 부분은 65일에 걸친 열진공 시험을, 태양전지판과 전개형 덮개를 두른 바깥 부분은 발사 진동을 견디는 진동 시험과 굉음을 쏟아붓는 음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고다드의 우주환경모사장치는 이 과정에서 영하 190도부터 영상 150도까지 로먼이 우주에서 만날 극한 환경을 미리 재현했습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과학자들. NASA/시드니 로드(Sydney Rohde)두 부분은 지난해 11월 25일 하나로 결합됐고, 올해 6월 21일 전용 컨테이너에 실려 플로리다에 도착했습니다. 우주개발 전문매체 NASA스페이스플라이트의 지난 7월 1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후 태양전지판 전개 시험과 단열재 점검, 추진제 탱크 시험이 순서대로 이어졌습니다.
스페이스뉴스의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연료 주입은 그달 하순 마무리됐고, NASA 천체물리학 책임자 숀 도마갈골드먼은 공식 발사 준비 시한인 2027년 5월보다 9개월 이른 일정을 두고 "이 팀은 주어진 자원 안에서 9개월 일찍 해내고 있다"며 "놀라운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발사를 앞둔 지난달 20일에는 발사 당일을 그대로 재현한 리허설이, 이튿날에는 비행준비검토 통과와 페어링 밀봉이 잇따랐습니다.
또한 NASA는 지난 7월 12일까지 로만 망원경과 함께 우주로 보내는 이벤트를 신청받았는데요. 노컷뉴스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모인 약 135만 명이 신청했고 이 이름들이 저장된 칩은 로만 우주선 동체에 탑재됐습니다.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을 저장한 칩을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동체에 탑재해 같이 우주로 보내는 이벤트가 지난 7월 12일까지 진행됐다. Nancy Grace Roman Space Telescope X 캡처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발사 이벤트에 신청한 노컷뉴스. NASA발사 성공 직후 NASA가 낸 발표문에서 제러드 아이작먼 NASA 국장은 "로먼은 우리가 NASA 전반에서 보고 싶어 하는 성공 사례 그 자체"라며 "일정을 앞당기고 예산을 지켜 인도된 이 임무는 NASA 인력과 산업 파트너들의 10년 넘는 헌신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네 차례 백지화 위기를 견딘 망원경에 보내는 공식 마침표였습니다.
석 달의 시운전, 그리고 2027년의 첫 사진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NASA발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NASA에 따르면 로먼은 발사 1시간 23분 만에 태양전지판과 하부 차양을 펼쳤고, 이튿날인 지난달 31일에는 약 4분에 걸친 고이득 안테나 전개에 이어 망원경 뚜껑 격인 개구 덮개까지 펼쳤습니다. 사흘째인 지난 1일 코로나그래프 전원 인가를 마쳤으며, 2주쯤 뒤 주력 관측기기인 광시야기기가 깨어나면 90일의 시운전이 본격화합니다.
이 기사가 나가는 지금 로먼은 그 시운전 초입을 지나는 중입니다.
망원경 통합시험 과학자 제러미 퍼킨스는 발사 당일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이 기간을 "타이어를 걷어차 보는 시간"에 비유하며 "초점이 맞는지, 지향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NASA는 2027년 초 첫 이미지 공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의 관측 영역과 허블 우주망원경의 결과물. NASA데이터 운영 방식은 로먼 박사의 유산을 그대로 잇습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로먼의 모든 관측 데이터는 처리되는 즉시 독점 기간 없이 전면 공개되고, 하루 1.4테라바이트라는 방대함 때문에 연구는 '로먼 넥서스'라는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이뤄집니다. 퍼킨스는 NPR에 "5년 기본임무가 끝날 때 로먼의 데이터베이스는 여러분이 쓰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발사 생중계 해설에서는 소수 연구자가 관측 시간을 경쟁하는 기존 대형 망원경과 달리 누구나 데이터를 받아 연구할 수 있어 천문학의 저변 자체가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수명 연장의 문도 열어뒀습니다. 기본임무는 5년이지만 설계는 추가 5년의 연장 임무까지 지원하며, 수명을 결정할 자원은 연료입니다. NASA는 현재 L2에서 관측선을 정비할 능력이 없지만 로먼은 재급유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고 밝혔습니다. 허블이 우주왕복선의 수리 덕에 설계 수명을 훌쩍 넘겼듯, 로먼도 미래의 급유선을 맞을 준비는 해둔 셈입니다.
3억개의 점 하나가 당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NASA 이벤트 페이지 캡처
픽셀 분양 이벤트를 통해 노컷뉴스는 17100번 픽셀을 분양 받았습니다. NASA현재 독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식도 있습니다. NASA는 발사에 맞춰 로먼의 첫 공개 이미지를 이루는 3억 개 픽셀 가운데 하나를 신청자에게 배정하는 '어답트 어 픽셀(픽셀 분양)'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NASA 이벤트 페이지에서 이메일 주소로 신청하면 픽셀 번호가 적힌 인증서가 발급되는데, 이메일 하나당 픽셀은 하나만 배정되고 내 픽셀에 우주의 어느 조각이 담길지는 첫 이미지가 공개되는 날에야 알 수 있습니다.
"여자는 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소녀는 인류에게 허블이라는 눈을 선물했고, 이제 자신의 이름을 단 눈으로 우주의 남은 질문들을 마주합니다. 그 첫 시선이 담긴 사진은 2027년 초에 도착합니다. 그 3억 개의 점 가운데 하나는 당신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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