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95%가 '유령'이다…로먼은 그 유령의 그림자를 추적한다[코스모스토리]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발사②]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NASA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NASA
▶ 글 싣는 순서
①크래커 18장으로 허블 100장을 찍는다…로먼이 품은 두 개의 눈[코스모스토리]
②우주는 95%가 유령이다…로먼은 그 그림자를 추적한다[코스모스토리]
③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던 소녀가 허블을 만들었고, 이제 자기 이름을 띄웠다[코스모스토리]
지난달 30일 우주로 떠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주력 우주망원경 '낸시 그레이스 로먼'은 지금 지구에서 150만km 떨어진 관측 명당, 태양-지구 라그랑주 L2 지점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석 달의 시운전이 끝나면 로먼은 인류가 아직 답하지 못한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곧바로 임무에 투입됩니다. 그 두 가지 질문은 '우주의 95%는 대체 무엇으로 채워져 있으며', '지구 같은 행성은 얼마나 흔할까요?' 입니다.

줄이 끊겼는데 그네는 돌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마치 '90년 묵은 유령 사냥'으로 볼 수 있습니다. NASA가 발사에 맞춰 낸 공식 설명자료 프레스킷에 따르면 1930년대 스위스계 미국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코마 은하단의 은하들이 튕겨 나가야 할 만큼 빨리 움직이는데도 서로 묶여 있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미국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개별 은하에서도 같은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은하 가장자리의 별들이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는 물질의 중력만으로는 도저히 붙잡아 둘 수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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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놀이공원의 회전 그네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네의 줄을 모두 끊어버렸는데도 그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돌고 있는 셈이라는 겁니다. 이런 관측이 쌓이면서 과학자들은 우주 물질의 5분의 4가 빛으로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라고 추정하게 됐습니다.
로먼 프로그램에 참여한 도미닉 벤포드 박사가 중력렌즈 현상을 샴페인 잔으로 표현하는 모습.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로먼 프로그램에 참여한 도미닉 벤포드 박사가 중력렌즈 현상을 샴페인 잔으로 표현하는 모습. NASA 유튜브 중계 영상 캡처
빛을 내지 않는 유령도 그림자는 남기는데, 로먼의 무기는 바로 그 그림자,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해 빛의 경로가 굽는 '중력렌즈' 현상입니다. NASA 로먼 프로그램 과학자 도미닉 벤포드 박사는 발사 생중계에서 샴페인 잔을 직접 들어 보이며 이 원리를 시연했습니다. 잔 아랫부분의 두꺼운 유리를 통과한 풍경은 일그러져 보이지만 유리의 굴절을 알면 원래 모습을 되짚을 수 있듯, 은하들의 미세한 일그러짐을 재면 그 사이에 놓인 암흑물질의 분포를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로먼은 이 방법으로 수억개 은하에서 보이는 물질과 암흑물질의 위치와 양을 함께 잰다고 프레스킷은 설명합니다. 암흑물질이 무겁고 느린 입자라면 우주 초기부터 빨리 뭉쳐 은하가 일찍 태어났을 것이고, 가볍고 빠른 입자라면 구조 형성이 늦었을 겁니다. 로먼의 우주 지도는 이렇게 암흑물질 후보를 걸러내, 지상의 검출 실험이 무엇을 노려야 할지 좁혀줍니다.

던진 공이 더 빨리 솟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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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령은 더 기묘합니다. 우주 전체 구성의 6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팽창을 점점 빠르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힘입니다. 프레스킷은 공중에 던진 야구공이 떨어지는 대신 보이지 않는 제트팩이라도 단 듯 더 빨리 솟구치는 상황에 비유하는데, 최근의 정밀 관측들은 이 힘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듯한 조짐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먼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이를 추적합니다. 약한 중력렌즈로 물질의 3차원 지도를 그리고, 밝기가 일정해 우주의 '표준 촛불'로 불리는 Ia형 초신성 수천개로 시대별 팽창 속도를 재며, 초기 우주를 가로지른 음파의 화석인 '바리온 음향 진동'이 시대마다 얼마나 늘어났는지 비교합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이렇게 완성될 3차원 은하 지도는 약 115억 광년 밖까지 뻗습니다.
유클리드 우주망원경. ESA유클리드 우주망원경. ESA
이 작업에는 먼저 L2에 가 있는 동료도 있습니다. 유럽우주국(ESA)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입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유클리드는 하늘의 3분의 1인 1만 5천 제곱도를 로먼보다 낮은 정밀도로 훑고, 로먼은 하늘의 12%인 5100제곱도를 훨씬 깊고 정밀하게 관측합니다. 두 관측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로먼의 고품질 데이터로 유클리드 데이터를 보정해, 그 보정을 유클리드의 훨씬 넓은 지도 전체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행성 10만 개, 은하수 인구조사

지구형 외계행성 상상도. NASA 고다드 우주센터지구형 외계행성 상상도. NASA 고다드 우주센터
두 번째 질문은 행성입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로먼은 미시중력렌즈와 통과, 직접 촬영까지 세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약 10만 개의 외계행성을 새로 찾아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확인한 외계행성이 6200개 남짓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도약의 폭이 엄청납니다.
주 무대는 은하 중심부 별이 빽빽하게 채워져있는 곳입니다. 로먼은 수억개의 별을 감시하며 앞별과 그 행성의 중력이 돋보기처럼 뒷별의 빛을 키우는 미시중력렌즈 신호를 기다립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이 기법은 다른 방법이 놓치는 행성 전문입니다. 화성만큼 가벼운 행성이나 별의 거주가능구역과 그 바깥을 도는 행성까지 잡아내, 수성을 뺀 태양계 모든 행성의 닮은꼴을 찾을 수 있고 이렇게 발견될 행성만 1천 개가 넘습니다.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우리은하 팽대부의 일부분. ESA/Euclid/Euclid 컨소시엄/NASA, CFHT, 이미지 처리:J.-C.쿠일랑드레와 E. 베르탱(CEA 파리-새클레이)유클리드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우리은하 팽대부의 일부분. ESA/Euclid/Euclid 컨소시엄/NASA, CFHT, 이미지 처리:J.-C.쿠일랑드레와 E. 베르탱(CEA 파리-새클레이)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우리은하 팽대부 속 세부 모습. ESA/Euclid/Euclid 컨소시엄/NASA, CFHT, 이미지 처리:J.-C.쿠일랑드레와 E. 베르탱(CEA 파리-새클레이)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우리은하 팽대부 속 세부 모습. ESA/Euclid/Euclid 컨소시엄/NASA, CFHT, 이미지 처리:J.-C.쿠일랑드레와 E. 베르탱(CEA 파리-새클레이)
이 사냥터에는 이미 선발대도 다녀갔습니다. ESA의 유클리드는 지난 7월 별 6천만개가 담긴 우리은하 중심부의 역대 최대 가시광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한 장에는 로먼이 감시할 영역 전체가 미리 담겨 있습니다. ESA는 이 사진이 로먼이 나중에 발견할 행성들의 질량을 재는 '과거의 기준 사진'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데이터에서 반대 신호도 추출합니다. 행성이 별 앞을 지나며 별빛을 살짝 가리는 트랜짓 현상으로 약 10만개의 뜨거운 거대 행성이 걸려들 전망이고, 이 가운데 수천개는 궤도를 도는 동안의 밝기 변화로 온도와 기후 패턴까지 잴 수 있습니다. 프레스킷에 따르면 어느 별에도 묶이지 않고 은하를 떠도는 행성과 갈색왜성, 거성 100만 개에서 일어나는 별지진까지 같은 관측에서 덤으로 나옵니다.

숲을 찍으면서 나무와 새까지 봅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영역을 비교한 자료. NASA 고다드 우주센터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영역을 비교한 자료. NASA 고다드 우주센터
발사 생중계 해설에서는 로먼과 제임스웹의 관계를 숲과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웹이 나무 한 그루와 그 위의 새를 들여다보는 망원경이라면, 로먼은 숲 전체를 찍으면서 나무와 새까지 함께 담는 망원경이라는 겁니다. 프레스킷도 둘을 광각렌즈와 줌렌즈에 비유하면서, 로먼이 넓게 훑어 찾아낸 희귀한 표적을 웹이 정밀 조사하고 로먼은 웹이 관측한 천체의 주변 맥락을 채워준다고 설명합니다.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NASA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NASA
로먼이 5년간 찍을 하늘은 허블이 30년간 찍은 것의 50배가 넘을 전망입니다. 첫 일반 천체물리 관측으로는 우리은하 원반의 별 200억 개를 담는 '은하면 서베이'도 예정돼 있는데요, 임무 첫 2년에 걸쳐 총 29일만 사용하는 관측입니다. 우주의 95%를 캐다 보면 아직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의 답까지 걸려들 것이라는 게 NASA의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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