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로 달리고 있는 신행철 고수(오른쪽)와 뤼시앵. 'ShaggysPhotos.com' 제공| ▶ '월클 마라토너' 신행철의 국제 대회 도전기 |
① '압도적 1위' 하프마라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② 애국가 5번이나 울렸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③ "메달? 우린 형제입니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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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종목을 신청했는데,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지난 6월 인터뷰 당시)5번째 금메달, 목표 달성이다. 그런데 피니시라인을 통과한 신행철 고수(高手)는 웃지 않았다.
지난 1일 오후 경북 경산시민운동장. 신 고수는 '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트랙 1500m 결승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4관왕에 오른 상태였다. 목표인 '금메달 5개'까지는 이제 단 하나만 남았다.
트랙 1500m, 크로스컨트리(6㎞), 트랙 계주(4X400) 등 3개 종목이 남아 있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날 경기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크로스컨트리는 신 고수의 주 종목이 아니다. 계주는 팀원들의 역량도 중요한 데다, 사정상 60대 그룹에서 뛰어야 했다.
트랙 1500m 결승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신 고수는 이날 신발 끈을 조이는 순간부터 비장했다. 이 종목만큼은 금메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뤼시앵 하이더(벨기에), 잭 포틀(미국) 등 단거리 종목에 강한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벨기에의 뤼시앵이라는 선수가 라이벌입니다. 이 선수는 장거리를 안 뛰어요. 단거리 전문이죠. 기록도 저랑 거의 비슷해요. 트랙 경기에서는 거의 둘이서만 경쟁합니다. 제가 불리할 수도 있어요. 저는 장거리까지 뛰었으니까요."
신 고수는 이미 로드 10㎞, 하프마라톤 등 장거리 경기를 치른 상태였다. 반면 뤼시앵은 이 종목에 참가하지 않아, 신 고수보다는 체력 부담이 덜한 상태였다.
앞서 8월 27일 진행됐던 트랙 5000m 경기에서 두 선수는 치열하게 맞붙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 끝에 신 고수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뤼시앵을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두 선수의 기록 차이는 1초도 나지 않았다. 신 고수는 19분 11초 61, 뤼시앵은 19분 12초 39를 기록했다.
당시 경기 영상은 해외 러너들의 관심을 끌었다. "두 선수 모두 존경 받아 마땅하다", "나는 40대지만 이분들과 비교도 안 된다",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 조회수 26만 회를 넘어섰다.
스타트라인을 향해 달려가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남자 70대 그룹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4시 20분. 경기 직전 대구와 경산 지역에 많은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출발 직전 비가 멈췄고,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가장 바깥쪽 레인을 배정받은 신 고수는 선수 대열 마지막에서 경기장에 입장했다. 출발선까지 스프린트하며 몸을 풀었다.
출전 선수는 총 15명. 출발 전까지 신 고수는 신중했다. 스타트라인을 바라보며 경기 중 유의해야 할 사항을 꼼꼼히 확인했다. 돌발 상황까지 대비하는 듯했다.
대회 5관왕이 걸린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신 고수는 예상대로 가장 빠르게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트랙 1500m 결승 출발 순간. 신행철 고수가 가장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이우섭 기자하지만 라이벌 뤼시앵 역시 만만치 않았다. 신 고수 뒤에 바짝 붙어 추격했다.
전략적으로 앞서 나가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 고수의 뒤에서 달리며 공기 저항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였다.
신 고수는 '뒤'를 신경 쓰며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반면 뤼시앵은 '앞'만 보고 달리면 됐다.
한 번이라도 페이스를 놓치면 역전을 허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격차였다. 뤼시앵은 호시탐탐 앞으로 치고 나갈 계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행철 고수의 뒤를 추격하는 뤼시앵. 이우섭 기자트랙 1500m는 400m 트랙을 약 3바퀴 반 뛰는 종목이다. 경기 내내 이같은 양상은 계속됐다.
관중석에서는 환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본 한 관중은 "경기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박빙이었다. '신행철 선생님이 1등을 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하며 선두를 내주지 않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하지만 신 고수는 괜히 세계 1위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앞에서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뤼시앵이 힘이 빠진 것 같을 때는 함께 힘을 비축했고, 상대가 치고 나올 타이밍에는 같이 속도를 올리며 격차를 유지했다. 뤼시앵이 앞으로 나갈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는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붓는 듯했다.
전력 질주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피니시라인을 앞둔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신 고수는 뤼시앵과 거리를 더 벌리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뚫었다.
최종 기록 5분 12초 02. 고작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죽여야 했다.
경기를 마치자마자 라이벌을 위로하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목표였던 '금메달 5개' 수확에 성공한 순간이다.
그런데 신 고수는 웃지 않았다. 숨도 고르지 않고 곧바로 뒤에 있던 뤼시앵을 꼭 안았다.
뤼시앵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이번 대회에서 번번이 신 고수에 막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앞서 트랙 800m와 5000m 종목에서 모두 '신행철'이라는 벽을 넘지 못해 2위에 그쳤다. (다만 뤼시앵은 다음날 열린 크로스컨트리 6㎞ 종목에서 신 고수를 2초 차이로 제치고 대회 첫 금메달을 땄다.)
모든 경쟁자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주자인 아리야라트네 수리야 아라치치게(스리랑카)가 들어올 때까지 트랙을 떠나지 않았다.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제야 활짝 미소를 지었다.
트랙 1500m 경기를 치른 남자 70대 그룹 선수들. 'ShaggysPhotos.com' 제공신 고수는 시상식 직전 2위 뤼시앵, 3위 잭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가방에서 모자 2개를 꺼내며 두 선수를 불렀다. 풀코스 세계 최고 기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특수 제작 모자였다.
이때 신 고수는 두 선수를 다시 한번 꼭 안아줬다. 특히 뤼시앵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세 선수는 같은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상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다음 대회 때도 멋진 경쟁을 펼치자"는 말이 오갔다.
신 고수가 선물한 모자를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세 선수. 이우섭 기자신 고수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금메달 개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같은 러너로서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열정은 모두 똑같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서 한자리에 모여 뜻깊은 경험을 하게 돼서 기쁘네요. 저희 연령대에서는 비행기까지 타고 다른 나라에 와서, 시차를 극복하고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메달을 딴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스컨트리에서 금메달을 딴 뤼시앵(오른쪽)과 2초 차로 은메달을 딴 신행철 고수. 신 고수 제공5개의 금메달은 그렇게 완성됐다.
이날 기자의 눈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순간이 아니었다. 라이벌을 끌어안고, 마지막 선수까지 기다리고, 경쟁자에게 선물을 건네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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