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의 프리마켓 거래가 중단돼 투자자 혼란이 빚어진 사태가 있었다. 1년간 200% 이상 상승하고, 최근 15거래일 중 상위 계좌 매수 비중이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경고 지정이 가능하다는 규정에 따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면서다. 당시 SK하이닉스 주가는 1년간 230% 상승한 상태였다. 국내 투자자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도 거세게 항의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 상위 100위 이내 종목을 투자경고종목 지정 대상에서 전면 제외하도록 시장감시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작년 말 국내 증시 급등기 SK하이닉스 거래 중단 사태는 현재 시장경보제도의 과도한 정량적 적출 문제 등의 종합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투자주의-투자경고-투자위험 3단계에 예고조치까지 있는 한국의 시장경보제도는 선진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과도한 측면이 있어, '정량'보다는 '정성'적 시장 감시 체계로 방향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남길남 선임연구위원은 1일 한국거래소(KRX)가 서울 사옥에서 개최한 '2026 건전증시포럼'에 발제자로 나서 이 같은 의견을 개진했다.
"최근 11년간 정량요건만으로 시장경보 발동된 비율 72.2%"
우리나라 시장경보체계는 2006~2007년 국내 역사상 최악의 주가 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루보 사태'를 계기로 지금의 3단계 경보시스템이 구축되며 발전해 왔다. 이어 대선테마주 급등 같은 각종 스캔들을 거치며 초단기급등 경고가 신설되거나, 시세영향력 또는 불건전 요건 등 경보 발동 요건이 신설되며 규제가 강화됐다.
문제는 투자경고 지정사유에서 점점 정량적 요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 연구위원은 "과거엔 정량요건과 불건전요건(정성적)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이후 최근엔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형국"이라며 "2015년부터 11년간 정량요건만으로 시장경보가 발동된 비율이 72.2%로 불건전요건(27.9%)보다 2배 이상 많다"고 짚었다.
이는 "시장 안정화 조치가 단기 과열과 겹치며 기계적 적출에 의해 시장경보가 발동된 비중이 많다는 것"이라고 남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시장경보가 투자자를 보호하고 과도한 가격 급등시 시장을 잠시 식히는 '쿨다운' 기능을 하지만, 너무 자주 울린다면 경우에 따라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시장 중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시장경보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들었다. 우리가 편입을 노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 선진국(DM) 지수에 속한 국가 중엔 우리나라처럼 공개적으로 시장경보를 울려 주의를 환기하는 사례가 없고, 호주와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만 시장경보제도가 매매제한조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 연구위원은 "내년 되면 우리나라도 MSCI DM 워치리스트에 올라가느냐가 관건인데, 결국 선진시장을 지향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게 제도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며 "싱가포르도 시장경보는 한 단계만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3단계에 예고까지 합하면 5단계나 돼 좀 더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경보 단순화가 투자자 보호에 소홀하거나 시장 규제를 완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정량요건 중심으로 시장경보 발동 요건을 명시하고 있어 악용될 소지도 있는데,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사안별 검토를 하는 싱가포르 사례를 들어 정성적 적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한투자증권 노동길 리서치본부 연구위원은 발제 이후 패널토론에서 "시장경보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소중한 정보가 되기에 일반투자자에게 각 증권사나 거래소가 어떻게 더 잘 전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최진영 본부장보는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정보 비대칭이 충분히 해소되고 성숙한 투자문화가 뿌리내렸다고 판단되는 시점이 오면 정보 제공을 통해 자율적 판단을 지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단기적으론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우리 시장 특성을 고려해 급격한 제도 변화보다는 경보 적출 요건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매매제한조치와 정보제공방식의 적정성을 살펴 단기 과열 완화 등 기존 시장 안정장치와 조화를 이루는 다각적인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AI 자본시장 활용 '양날의 검'…"고빈도 알고리즘 매매에 이미 활용" 우려도
1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열린 '2026 건전증시포럼' 시작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한 모습. 한국거래소 제공건전증시포럼은 자본시장 건전성 제고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제 발굴과 개선방향 모색을 위해 2005년부터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매년 개최하는 포럼이다. 올해 포럼은 특히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Korea Premium Weeks) 2026'와 연계해 열렸다.
이날 포럼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의 자본시장 활용에 대한 카이스트 경영대학 황근호 교수의 발제도 이뤄졌다. 황 교수는 "AI가 정보분석부터 거래집행까지 자본시장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에도 활용될 수 있으나, 그에 따른 새로운 리스크 발생 가능성 등을 감안해 AI 모델 거버넌스 및 활용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AI가 주는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거래 쏠림에 의한 시장 변동성이 극대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 교수는 "여러 금융회사가 비슷한 AI 모델과 데이터를 사용하면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이때 동시 매도로 인한 유동성 감소로 가격 이 크게 하락하며 시장 전체에는 불안정을 키울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양기진 교수도 "특정 AI 서비스로의 집중력이 부각되고 동조적인 행동이 종합적으로 발생할 경우 나오는 결과는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다"며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에 따른 거래 쏠림이나,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로 인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영향 증폭 등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최근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에는 AI가 뒷받침됐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시장을 감시하거나 감독하는 관점에서는 AI로 인한 집중력과 이로 말미암은 시스템 리스크를 예상하고 이를 완화하고자 대응 조치를 취하는 것이 큰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거래소 김홍식 시장감시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최근 증시 활성화와 변동성 확대가 공존하는 가운데, 공정한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적절한 시장 관리 방식에 대해 점검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선물위원회 박민우 상임위원은 축사에서 "증시 변동성 확대 및 AI 기술의 발전 등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경쟁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투자자의 두터운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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