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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필요 없었어요"… '디너모드'의 '오브제'가 된 수민의 얼굴[EN:박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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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상품 개봉을 뜻하는 '언박싱'(unboxing)에서 착안한 'EN:박싱'은 한 마디로 '앨범 탐구' 코너입니다. 가방을 통해 가방 주인을 알아보는 '왓츠 인 마이 백'처럼, 앨범 한 장에 담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살펴보는 '왓츠 인 디스 앨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들고 표현하는 사람들의 조금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57번째 EN:박싱에서는 수민의 두 번째 정규앨범 '디너모드'를 다룹니다.

수민 정규 2집 '디너모드' 제작기 ② 앨범

지난 8월 13일 발매된 싱어송라이터 수민의 정규 2집 '디너모드' 표지. 스탠다드프렌즈 제공지난 8월 13일 발매된 싱어송라이터 수민의 정규 2집 '디너모드' 표지. 스탠다드프렌즈 제공
눈썹과 눈, 코, 입, 사선으로 자리한 머리카락. 지난 8월 13일 나온 싱어송라이터 수민의 두 번째 정규앨범 '디너모드' 표지는 수민의 얼굴로만 가득 차 있다. 가수의 이름도, 앨범명도 뒷면에서나 찾을 수 있다. '30대에 들어선 서울에 사는 여자의 고단함'이라는, "굉장히 사적인 주제"를 다룬 앨범이기에 "얼굴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얼굴을 전면 배치한 표지를 쓰고 싶었다. 함께 작업해 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자주 하던 얘기다. 그게 '디너모드'가 될 줄 몰랐지만. 수민의 단독 콘서트 포토 존에서 실물 음반을 얼굴에서 조금 멀리 떨어뜨려 인증 사진을 찍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도 수민의 '설계' 안에 있었다.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두 달이 조금 안 된 지난 6일 오후, CBS노컷뉴스는 서울 마포구 스탠다드프렌즈에서 수민을 만났다. 두 번째 편에서는 앨범 전반과 시각적 요소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단독 작사가이자 작곡가,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수민은 이번 '디너모드'에서도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프로듀서'로서 이번 앨범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을 물었더니 그는 "너무 어려운데… 이거(아티스트/프로듀서)를 나눠서 생각하는 게 저한텐 더 어렵다. (음악 작업) 시작할 때부터 그냥 마이크가 여기(왼쪽) 있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장치가 여기(오른쪽)에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도 같은 자세를 오래 유지하다 보니 "심지어 척추가 휘어있어"서, 최근에는 마이크 방향을 바꿔서 할 정도가 됐다고. 수민은 "그 정도로 '프로듀서 수민'과 '플레이어 가수 수민'을 나누는 게 51:49 비율이다. 그 수치가 거기서 왔다 갔다 하는 느낌? 저는 애정하는 작업인 거 같다. 하나를 하다 보면 그다음 과정이 자연스럽게 결정돼서"라고 밝혔다.

'디너모드' 부클릿. 수민 인스타그램 '디너모드' 부클릿. 수민 인스타그램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같다는 것은,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수민은 "모든 앨범이 다 그랬다. 제가 하는 일이 가진 극단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매력적인 장점이고 너무 위험한 단점이다. 저는 제가 잘하고 싶은 거랑 좋아하는 게 일치된 삶을 살고 있으니, 이 삶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고통스럽긴 하지만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디너모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하면 26분 51초가 걸린다. 전반적으로 곡 길이가 짧아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만들다 보니 짧게 나온 것일까. 수민은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을 들으면 정규앨범이 정말 길다. 필요하지 않게 들리고 있는가 아닌가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제가 들었을 때 제 목소리는 피곤한 편이다. 중간 음역에서 고음으로 갈 때 밀도 있는 편이라서 제 데모(임시 녹음 곡)를 그냥 클라우드(저장 장치)에 넣고' 아, 피곤하다' 이러면서 안 듣는다. 그런 측면이 사실 조금 있을 거 같고, 두 번째는 저도 긴 걸 못 듣는다. 아티스트, 제작자이기 전에 저는 대중인데 저도 긴 노래를 못 듣는다. 음악과 시각적으로 나오는 감정선이 있다면 가능하지만"이라고 답했다.

"음악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상황이 거듭될수록 저는 오래 못 듣는 거 같아요. 그게 저한테도 적용되고요. 세 번째로는 '효율'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제 감정을 들어주세요, 제 감정에 동기화돼 주세요 하는 게 되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단순할 수도 있지만, 노래가 2절까지 하고 브리지 넘어가서 아웃트로로 간다면 (각각) 할 때의 이유가 명확해야 해요. 말미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장치라면 저는 무조건 쓰는데, 때로는 BPM(Beats Per Minutes, 1분당 미디 마디 수)을 바꾸거나 해서 아예 다른 장치로 가기도 하죠. 그래서 DJ들이 제 음악을 틀 때 어려워하는 편인 것 같아요. (웃음)"

수민은 이번 앨범의 비주얼 콘텐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따로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동안 주혜린, 존박 등과 작업했고 수민과는 '미니시리즈' 첫 번째 편부터 함께한 룸마니아(roommania)의 소요다. 매일 통화하고 메신저를 나누며 "상시 소통"하며 앨범의 시각적 요소를 만들어 갔다. "저희의 상시 대화가 그냥 나온 거예요. 대단한 어떤 여정이 있었다기보다는… (웃음)"

수민이 지난달 18~20일 개최한 단독 콘서트 '2026 수민 라이브 디너모드'에서 노래하는 모습. 스탠다드프렌즈 제공수민이 지난달 18~20일 개최한 단독 콘서트 '2026 수민 라이브 디너모드'에서 노래하는 모습. 스탠다드프렌즈 제공
"음악과 비주얼이 서로를 너무 '직접적으로 번역'하는 느낌이 아니길 바라는" 방향을 잡았다. 앨범명이 '디너모드'라고 해서 바로 식탁을 배치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란 뜻이다. 또 하나의 중심은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였다. 이렇게 수민과 소요 두 사람은 "기세에 관한 합의"를 이뤘다.

얼굴을 '전면 배치'한 표지는 "둘이서 그냥 늘상 얘기한" 것이었다. 수민은 "전면적으로 프레임을 다 채우면서까지 얼굴이 다 나와서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얼굴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20대 때 감추고 싶었던 것들을 숨김없이 꺼내는 것처럼 '디너모드' 자체가 굉장히 사적인 주제를 다루는 앨범이고, 시작부터 다른 사람 목소리 없이 끝까지 제가 가져가게 된 앨범이기도 하니까. 추상적인 이미지 뒤로 저를 감추기보다는 앨범 만든 사람 얼굴 전체가 가장 직접적인 하나의 오브제 역할을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열린 단독 콘서트의 포토 존에서, '디너모드' 표지로 얼굴을 가린 채 인증 사진을 찍는 수민의 팬들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수민은 "CD가 나왔을 때 (그걸) 들고 찍는 걸, 소요와 저는 사실 그 부분을 설계하고 계산하긴 했다"라면서도 "이건 아직 아무도 안 했는데 뒷면에는 구두 옆면이 있는데 신발처럼 보이게는 안 하셨더라. 제가 먼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인터뷰에서 말씀드린다"라며 웃었다.

또한 수민은 "수민이라고 하면 팝하고 뜨겁고 화려하고 아이코닉하려고 하는데 좀 산만한가 하는 느낌도 있는 것 같더라. 이런 걸 정제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스포티파이에서 수민을 검색하면 나오는 요란한 아트워크를 어떻게 하면 상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있었다"라며 "전부 다 저의 선택"이라고 부연했다.

싱어송라이터 수민. 스탠다드프렌즈 제공싱어송라이터 수민. 스탠다드프렌즈 제공

실물 음반의 주얼 케이스 앞면은 영어 알파벳 소문자로 쓰인 '디너모드'(dinnermode)로 가득 찼다. 이 색을 고른 이유에 관해, 수민은 "일단 제일 좋아하는 컬러가 블루인데 이걸 소요도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블루에도 여러 톤과 여러 코드가 있는데 어떤 게 어울릴까 하다가 단순하면서도 집착적인 면과 광기가 있는 컬러로 고르려고 했다"라고 답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소요와는 두 장의 '미니시리즈' 앨범과 미니앨범 '시치미', 이번 '디너모드'까지 인연이 꽤 길다. 그만큼 잘 맞았기에 오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수민은 "저희가 서로 굉장히 많이 다르다. 저희가 늘, 맨날맨날 얘기하는 게 뭐냐면 '좋아하는 게 다른 건 축복이고 싫어하는 게 같은 건 더 축복'이라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소요에 관해 "징그러워하는 포인트가 소름 끼치게 똑같다. 그래서 '싫은 것만 안 하면 오래 갈 거야' 하는 맥락인 것 같다"라고 한 수민은 "진짜 친하지만 서로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것들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라고 바라봤다.

2023년에 발표한 미니앨범 '시치미' 작업 과정에서 데이터가 두 번이나 날아간 적이 있다고 고백한 수민.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어땠는지 묻자, "다행히 이번에는 백업 잘했다"라며 웃었다. 현 소속사 스탠다드프렌즈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내는 정규앨범"이어서 더욱더 신경 써서 '저장'에 몰두했다.

슬롬과 같이 만든 '미니시리즈' 때는 전체 데이터를 둘이 나눠서 저장할 수 있었지만, 이번 '디너모드'는 "제가 호스트이다 보니까 제가 모든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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